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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월행·68)사념처수행 - 상

기자명 법보

어릴적 신비한 부처님 꿈에
초월 존재 보호 받는다 여겨
‘금강경’으로 꿈일뿐 깨달아
일시적 현상 연연치 말아야

‘두두물물(頭頭物物)’

머리의 우측 상단부분에서 문자가 새겨지듯 어떤 유기체가 움직이는 것 같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느낌이 찾아왔다. 그 다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8차선 대로와 인접된 길 어귀 보행 중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옆 사람과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해야만 들릴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도 그것 외 일체의 인식이 사라진 현상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생에서 간화선 수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소음으로 인하여 대단히 시끄러운 대로변의 건물에서 삼중창인 창문을 닫았을 때의 고요함, 소리와 공기가 차단된 돔 안에 들어있을 때의 느낌, 고요와 성성함이 함께 한 것이었다. 처음 겪는 현상에 놀라 당황했다. 1년 반 정도 나름 재가자가 할 수 있는 수행 끝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러나 연연하지는 않았다. 철저한 오계의 지킴과 산중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흉내를 내면서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느 생인지 또는 전생인지는 몰라도 내가 출가수행자였음을 나는 확신한다. 틀림없이 간화선 수행자였을 것이다. 

불교와의 조우는 유년 시절 어머니가 머리맡에서 읊조리던 ‘천수경’ 소리가 첫 기억이다. 자장가로 삼아 들으며 70% 이상 저절로 외우게 된 것이 시작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영향인지 어릴적부터 출가 암시가 줄곧 찾아왔다.

숱한 암시 중 15세 무렵 기이한 꿈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난다. 만약에 해인삼매(海印三昧)가 그림으로 표현된다면 그 꿈에 나타난 모습이 아닌지 감히 생각해 본다. 꿈의 내용인즉, 티 하나 없는 지극히 맑고 깨끗한 백사장 앞에 펼쳐진 바다는 움직임이 없이 고요했으며 내 바로 뒤에는 평행봉이 하나 서 있었다. 수평선의 양쪽으로 전북 진안 마이산과 같은 두 산이 양쪽에 서 있었는데, 휘어진 두 산 사이의 바다 수평선에서 화산이 터지듯 불꽃과 함께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황금색으로 된 입불상이 하늘을 가로질러 내 앞 허공을 충만한 자비심으로 가득 채우며 서 있었다. 

그 위세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키 높이는 대단히 큰, 가슴이 절로 숭고해지는 모습이었다. 삭발한 머리는 빛이 났고, 가슴으로부터 무릎 언저리까지는 은은한 자금색 안무가 흐르듯 둘려져 있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하는 나의 질문에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서천(西天)으로 간다”는 웅장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해 지금도 선하다. 나에게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는 암시인듯 싶었다. 이 꿈을 꾼 뒤로 어떤 특별한 초월적 존재가 날 보호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세월을 허망하게 보냈다. 억겁을 두고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앞에 두고서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해 온 것이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다.

‘육신으로 여래를 보거나 음성으로 부처를 구하면 이 사람은 헛된 길을 가는 자로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들은 모두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이 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금강경’의 사구게는 꿈 속을 헤매고 있는 무지몽매한 중생에게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다. 또 ‘무아특징경’에서는 자신을 직시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오온),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출가의 암시가 그동안 끊이지 않았음에도 무지와 무명으로 인한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혀 온 삶과 어떤 업의 작용이 있었나 보다. 생을 살아오다 보니 지금은 일주문 밖을 배회하게 되었다. 갈 곳도 모르는 자가 온 곳을 어떻게 알겠는가. 남은 생이라도 애써 밝힐 일이다.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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