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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엔 퀀텀 점프

기자명 선우 스님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조건화된 생각에 갇혔기 때문
긴장 풀고 실체 없음 보는 게
수행을 통해 해야 할 모든 것

2월을 ‘정화의 달’이라고 한다. 2월을 뜻하는 ‘February’라는 단어의 어원은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하기에 앞서 묵은 때를 씻고 향을 쬐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도 2월 15일에 죄를 씻는 예식이 있었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2월이면 정초기도, 입춘 삼재기도를 앞두고 사찰마다 정성 가득한 기도의 풍경이 불자들에겐 익숙하다. 바로 이 기도와 의식이 정화의 과정에 해당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정화는 새롭게 시작하거나 깨어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시공간을 점프해 인도로 가보자. 브라만 가문의 신심 깊은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날마다 업을 정화하기 위해 목욕을 했다. 어느 날 강가를 지나던 성자가 그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그대처럼 씻어서 업이 정화된다면 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은 다 깨달았을 것이네!” 
그 말을 듣고 놀란 여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간절히 물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자는 말해주었다. 
“애쓰지 않는 것! 다만 긴장을 풀고 실체 없음을 보아라. 이것뿐이니라.”

이 진실한 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언구와 지견 속을 헤매고 더듬거렸나 보다. ‘애쓰지 않는 것!’ ‘다만 긴장을 풀고 실체 없음을 보는 것!’ 사실 이것이 수행을 통해서 해야 할 모든 것이었다. 

업을 정화한다는 말에는 업식을 실체로 두고 그것을 갈고 닦아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함이 있다. 시작부터가 뭔가 어그러진 느낌이다. 하지만 출가해서 줄곧 부족하고 못난 내가 갈고 닦아서 후에 깨달음을 얻고, 행복하게 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왔다. 

연속되고 있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 지독히도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었다. 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아서 엎치락뒤치락 수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았던가…. 나라는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즉각적으로 그 실체 없음을 바로 보는 것이어야 했다.
 
다시 한번 시공간을 점프해 우리의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중앙의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팽팽 돌고 있다. 놀랍도록 가볍고 지극히도 작은 전자는 양자화되어있다고 한다. 그 말은 전자가 사방팔방으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 띄엄띄엄 일정 궤도 안에만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치적으로 원운동은 가속도 운동이므로 종국에는 전자가 돌다가 원자핵과 부딪쳐 붕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붕괴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자가 연속해서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이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점프하면서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순간적으로 도약하듯이 전이되는 상태를 ‘퀀텀 점프(Quantum Jump)’라 한다. 존재의 실상은 이렇듯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임을 우리의 세포 속 양자의 세계에서 증명되고 있다. 마음이 늘 뭔가를 추구해 마지않는 사람이라면 반복되는 자기 궤도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조건화된 한 생각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잘 보면 생각은 고정된 패턴을 지니고 있고 어떤 궤도 속에서 동일 회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을 힘, 의식의 반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연속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궤도를 벗어나서 도약하지 않으면 자멸뿐이다. 우리의 세포를 구성하는 미립자 속의 양성자, 중성자, 전자는 이미 그렇게 잘살고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우리의 의식도 이제 양자 도약이 필요하다. 2월을 ‘정화의 달’이 아니라 ‘퀀텀 점프의 달’로 삼고 싶은 이유다. 내가 있고, 그 내가 더 나은 곳으로 향상일로(向上一路)해야 한다는 고정된 패턴으로부터 확실하게 궤도를 이탈해야겠다.

선우 스님 부산 여래사불교대학 학장 bababy2004@naver.com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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