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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의 공덕

기자명 세광 스님
  • 청년 칼럼
  • 입력 2024.02.05 10:52
  • 수정 2024.02.16 15:24
  • 호수 1715
  • 댓글 0

2023년 여름, 매주 법회를 어떤 주제로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다. 임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의 사정도 잘 모르고 군종병의 잦은 휴가로 모든 청소를 혼자 도맡아 했다. 청소가 끝나가던 어느 날, 창문이 눈에 띄었다. 두껍고 어두운 커튼이 쳐져 있어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창문을 닦으려 커튼을 열어젖히는 순간, 넓고 높은 통창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통창 사이로 비치는 청명한 하늘과 마당의 작은 나무, 이곳이 절임을 일깨워주는 탑이 수채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후 창문은 나에게 쉼터가 되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청소하다가 힘이 들면 잠시 방석을 깔고 누운 채 창문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문득 마음이 지칠 때도 창문을 바라보며 위로받곤 했다. 이 창문은 꼭 보물 같았다.

근 한 달간 청소와의 사투(?)를 벌이며 청소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 청소는 자주자주 해야 한다는 것과 혼자서 하기는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중고로 샀다는 건 비밀이다. 마지막으로 청소는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게 해준다. 나는 청소로 인해 누구도 몰랐던 호국백일사의 멋진 창문을 발견했고 그것은 곧 나의 보물이 되었다.

불자라면 대다수 알고 있는 ‘천수경’에는 ‘도량찬’이라는 게송이 있다.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 아금지송묘진언 원사자비밀가호…” 쉽게 말해 도량을 깨끗이 하면 삼보와 천룡이 오셔서 우리를 가호해준다는 뜻이다. 도량은 우리가 지내는 곳을 말하지만 마음도 의미한다. 도량을 청소하듯 마음을 도량처럼 청소한다면 우리는 늘 불보살님들의 가호 아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주변과 마음을 청소한다는 것은 우리가 항상 부처님의 가피 아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 얘기를 법회에서 용사들에게 해주었다. 마음을 청소하는 데도 청소철학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먼저 마음을 매번 청소해야한다는 것. 마음에도 분노, 불안, 미움과 같은 더러운 먼지들이 계속해서 쌓일 것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책상에 먼지가 앉듯 우리의 마음에도 불만과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청소가 귀찮은 것처럼 마음을 청소하는 것도 혼자 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용사들이 마음을 청소할 때도 나의 청소를 도와주는 군종병과 로봇청소기와 같은 도우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일요법회다. 이 말을 하니 용사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피식 웃었다. 물론 일요법회에 꾸준히 오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지만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마음에 쌓인 먼지들은 너무 작아서 금새 잊어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에 먼지가 쌓인 줄도 모른 채 먼지와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용사들이 일주일 동안 쌓인 마음의 먼지를 일요법회에 와서 다 털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군 생활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다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마음속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법회를 통해 그 보물을 발견한다면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쉴 곳이 되어주고, 혹여 상처를 받았을 때는 위로가 되어 주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마음의 보물은 상황마다 불성으로, 회복탄력성으로, 긍정에너지로도 불릴 수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다만 마음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다치고 상처가 나더라도 금방 회복하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나는 용사들이 매주 법회를 통해 마음의 청소를 도와주는 로봇청소기와 같은 청소장교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용사들이 마음의 숨겨진 보물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임관한지 7개월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청소장교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청소는 나에게 더 이상 하기싫은 일과가 아니라 가장 보람되고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세광 스님 jjiya47@gmail.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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