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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옷감을 찢어라:부처님의 절세법

공양받은 옷감의 ‘상품성’ 훼손…‘할절의’ 유래

공양받은 옷감에 과세 발생…공양 거절 불가능한 승단 고려 
거칠게 염색하거나 찢도록 계율 명시…중고로 만드는 절세법
공양품 승단에서만 사용된다는 불자들 신뢰 구축에도 도움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든 스님들의 가사는 공양받은 옷감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법보신문 DB]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든 스님들의 가사는 공양받은 옷감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법보신문 DB]

지난 2018년부터는 종교인도 과세대상이 되었다. 당시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만만찮게 거론됐었다. 과거에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다른 종교는 모르겠으나 불교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스님은 무소유였기 때문에 낼 세금이 없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초기교단에서는 승려들의 가사와 발우가 유일한 소유물이었다. 비록 현대사회에서는 스님들이 아무리 무소유라 해도 이렇게 살 수는 없기에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세속과 단절되어 최소한만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한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인들의 사치, 도박 등 비리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며 결국 여론은 종교인과세라는 법을 만들어내게 했다. 부처님이 계셨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을까.

부처님 당시에는 무소유가 원칙이었기에 원천적으로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것 같지만, 계율을 다룬 책들을 보면 당시의 스님들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도는 당시에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는데 마치 오늘날 공항에서 세금 물품을 신고하는 것처럼 나라들의 국경을 지날 때마다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런데 세금에 대한 규정이 나라마다, 때마다 달랐다. 어떤 때에 상인들은 세금을 안 내도 됐지만, 일반인들은 내야 했었다. 아마도 각지의 상인들을 끌어모아 상업을 장려하기 위해 이런 특혜를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몇 승려들이 가사를 지으라고 공양받은 천을 가지고 들어오다 세금을 물게 될 것 같자 꾀를 내어 동행하던 상인들에게 세관을 통과할 때만 천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여 세금을 내지 않고 통과하는 사건이 있었다. 마치 공항에서 양주나 담배를 많이 샀을 때 친구에게 초과분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각 나라의 법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편법은 계율에 어긋난다고 하여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법이 달라 종교인들만 면세가 되는 곳도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는 반대로 상인들이 상품을 스님들께 위탁해 세관을 통과하기도 했다. 세관에서 불만이 제기되자 부처님은 다른 사람의 짐을 맡아주는 것도 계율에 위배된다고 규정하셨다. 때로는 스님들이 짐을 운반해주어 세금을 안 내게 되면 상인들이 그 보답으로 스님께 시주를 하겠다고 제안하여 물건을 맡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랜 기간 승려와 상인이 동행하다보니 생긴 친분으로 인해 부득이 맡아주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원천적으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과세대상인 물품을 가지고는 아예 세관을 통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으면 “계율에 금지되어 있어 부탁을 들어드리기가 어렵습니다”라고 속편하게 거절할 수 있게 하신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스님들이 사실상 과세대상인 물품을 가지고 세관을 통과할 일은 별로 없었지만, 한가지 품목이 유독 문제였다. 바로 옷감이었다. 불자들이 스님들께 음식만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지어 입으라고 옷감을 시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타지에 나가서 옷감을 시주받는 경우, 이러한 옷감은 상품성이 있어 과세의 대상이므로 문제가 된 것이다. 시주받은 옷감을 가지고 국경을 넘자니 부처님이 정하신 계율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자들이 시주를 하는데도 스님들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단지 재물에 대한 포기의 문제가 아니라 공양하는 불자에 대한 결례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셨다. 시주받은 물품의 상품성 때문에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라면, 상품성을 제거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래서 시주받은 옷감을 거칠게 물들이라고 하셨다. 즉, 일반적으로 시주받은 옷감은 깨끗한 하얀색 천이나 화려한 비단이었는데 이를 잿물이나 황토물로 물들이면 중고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계율에 따라 옷감을 물들이던 스님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물들이기 위해서는 솥에 물을 끓여야 하고, 옷감을 그 안에 넣고 삶아야 했는데, 이 일이 구걸하고 돌아다니면서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작업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앉아서 물들이려고 하다가 도적을 만나 옷감을 다 빼앗기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더 쉽게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옷감을 찢어라”는 것이었다. 한 장의 커다란 옷감은 상품성이 있지만, 찢어진 옷감은 상품성이 없다.

현재 스님들의 가사는 여러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원래 이 전통은 ‘분소의’라고 하여 버려진 천 쪼가리를 이어 붙여 옷을 해 입던 불교의 전통에서 시작된 것이다. 멀쩡한 천이 버려질리는 없으니, 넝마 같은 천들을 이어 붙여 한 벌의 가사를 만드는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런데 점차 음식뿐 아니라 가사를 짓기 위한 천을 공양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굳이 쪼개진 가사를 입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현재처럼 이어 붙인 가사를 입는 이유는 보통 ‘사분율’ 권40에 나온 바와 같이 공양받은 옷감은 값어치가 있어 도둑들이 훔쳐 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한 장의 옷감을 받았더라도 상품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쪼개서 가지고 있다가 필요시 분소의처럼 이어 붙여 가사를 만들어 입으라는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할절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옷감을 찢었다가 이어 붙이는 것은 다만 도둑맞지 않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금 문제를 위해 옷감을 찢으라는 이야기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권4에 나온다. 이러한 대응은 단순히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탈세와는 엄연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무소유인 교단에서 승려 개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옷과 끼니에까지 세금을 낼 필요는 없으므로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문제점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일종의 절세법이었던 셈이다.

나아가 이것은 절세를 넘어선 근본적인 목적을 지닌다. 불자들 입장에서는 공양한 물품이 상품으로 되팔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스님 가사용으로만 쓴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신호이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신뢰의 문제였던 것이다. 과거 종교인 과세법이나 근래에 논란이 되었던 사찰입장료 문제 등은 결국 돈을 내는가 안 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 문제였다. 부처님은 종교인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이 있다면 이런 문제가 아예 대두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으리라. 세금을 걷는 정부도, 임금협상을 하는 기업도 예외가 아니지 않을까?

주수완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indijoo@hanmail.net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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