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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교유사단체, 유사종교, 그리고 사이비종교 

근대 종교 지형을 바꾼 한 가지 물음

유사종교·사이비종교 어원은
1915년 ‘포교규칙’ 제15조
식민지 시기 비공인 종교는
‘가짜 종교’란 인식 가져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종 해답을 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물음은 쉬이 ‘무엇이 종교인가?’라는 물음으로 전환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물음 전환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해답이 제시되면 우리가 아는 ‘근대 종교’가 탄생한다.

1906년 2월 통감부가 설치된 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11월 17일에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공포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하여 신도, 불교, 기타 종교 등 일본종교의 한국 포교에 관한 규정을 만든다. 한일병합 후 조선총독부는 이 규칙을 한국의 종교로 확대하여 1915년 8월 16일에 ‘포교규칙’을 공포하고 10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포교규칙’ 제1조는 “본령에서 종교라 칭하는 것은 신도, 불교 및 기독교를 일컫는다”라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종교로서 포교할 수 있는 ‘공인 종교’와 그렇지 않은 ‘비공인 종교’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종교로서 포교할 수 있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종교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선포하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근대 세계의 질서와는 어긋나는 이질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로 인정받은 공인종교는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이런 ‘다른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합리성과 실증성 같은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더라도 ‘종교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영화처럼 종교로서 유통될 수 있었다.

그런데 ‘포교규칙’ 제15조는 “조선총독은 필요한 경우에 종교유사단체로 인정하는 것에 본령을 준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포교규칙’ 제1조는 포교 자격이 있는 공인종교를 규정하고, 제15조는 비공인종교, 즉 종교유사단체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종교유사단체의 ‘다른 이야기’는 과학적, 사회적 검증을 통해 언제든 사법 당국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었다. 공인종교는 어느 정도까지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되지만, 종교유사단체는 함부로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내내 ‘포교규칙’ 제15조에 따라 종교유사단체에 종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따라서 ‘포교규칙’ 제15조는 한 번도 실행된 적 없는 허울뿐인 조항이었다. 1889년 2월 11일에 공포되고 1890년 11월 29일에 시행된 일본의 제국헌법 제28조는 ‘신교(信敎)의 자유’를 규정한다. ‘신교의 자유’는 신앙, 종교적 행위, 종교적 결사의 자유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다만 신교의 자유에는 포교의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포교규칙’은 제국헌법의 ‘신교의 자유’ 조항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특이하게도 식민지 조선에서 ‘종교유사’ 또는 ‘종교유사단체’라는 말이 먼저 사용되었다. 4년 후 일본에서도 “종교유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1919년 3월 3일에 문부성 종교국이 경시청 등에 보낸 ‘종교와 그에 유사한 행위를 하는 자의 행동 통보의 건’에는 “신불도, 기독교 등의 교종파에 속하지 않은 채 종교유사의 행위를 하는 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1935년 9월 10일에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유사종교’가 간행된 후부터는 ‘종교유사’라는 말이 ‘유사종교’라는 말로 도치되고, ‘종교유사단체’가 아니라 ‘유사종교단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 계속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종교유사단체는 보안법과 경찰범처벌규칙에 의해 불경죄, 조언비어죄, 사기죄 등으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935년 이후에 ‘유사종교=사교(邪敎)’라는 등식이 강조되면서 유사종교는 이제 비공인종교가 아니라 ‘가짜 종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비공인 종교는 종교유사단체에서 유사종교로 전락했고, 다시 유사종교는 언제든 사교로 더 깊이 추락할 수 있는 위험한 종교로 인식되었다. 그 후 근대 종교 지형을 재편한 것은 “무엇이 종교가 아닌가?”라는 물음, 즉 진짜 종교와 가짜 종교의 구별이었다. 사이비종교라는 개념도 이러한 인식의 재편 속에서 등장했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hangyick@gmail.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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