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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함께 걸었다

기자명 희상 스님

불자들과 함께한 인도순례
성지 참배…가르침 되새겨
조용히 눈감고 정진하기도
매 순간 감동 경험한 여정

십년 전 다녀온 인도로 이번에는 불자님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었다. 열흘 동안 마법의 성과도 같았던 따뜻한 나라 인도에서 함께 간 불자님들과 현지인의 포용력에 큰 감동을 경험한 여정이었다. 이번 순례를 통해 불자님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그분의 생각을 읽고자 했다. 성지에서 주고받은 말에는 그분의 믿음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순례의 순간순간이 연꽃처럼 피어난다.

“스님! 여기는 다른 세상 같아요. 저승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다른 세상이요.” 바라나시에서 마주한 안개 자욱한 새벽, 배를 타고 가는데 어느 순간 앞과 뒤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저곳이 동쪽인지 서쪽인지, 여기가 강인지 늪인지 모를 안개로 가득 찬 세상. 안개가 걷힌 저쪽을 이승, 안개 짙은 이쪽을 저승이라 여기며 불자님은 ‘다른 세상’이라 하였다.

강가 중간 즈음에서야 장작더미를 차곡차곡 옮겨서 불길 속에 하나씩 던지는 소년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곳이 바라나시 화장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 소년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장작을 옮겼을까. 그래서 소년도 장작을 옮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훗날 소년의 아들도 장작을 옮기게 될까.’ 생각과 안개가 뒤섞여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붓다께서 무상의 가르침을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당장 하룻밤에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우리의 습관이 너무도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상의 가르침을 배워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적용하지 못하고 몹시 두려워한다. 붓다께서는 “무상한 것을 영속하는 것으로 잘못 아는 것이 괴로움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히셨다.

사르나트에서 한 불자님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 드넓은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와 앉아 대화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져요!” 붓다께서 꼬박 일주일을 걸어 사르나트로 오셨다는 생애의 한 장면은 우리에게 법의 도반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절실하게 알려준다. 자신을 신뢰했던 사람들은 물론 비난하고 등 돌린 동료들까지 붓다께서는 옛 도반들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다. 그리고 이렇게 설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잘 알아야 한다. 출가수행자에게는 반드시 버려야 할 두 가지 장애가 있다. 첫째는 집착에 쾌락에 빠지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괴롭히는 고행에 빠지는 것이니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가거라.”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것 그리고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끼는 것에 대해 집착을 끊어야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붓다의 아주 멋진 비유가 있다. 

“소금 한 줌을 대접의 물에 넣고 휘저었다고 해 보십시오. 이 물은 너무 짜서 마시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소금 한 줌을 강물 속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강물은 전혀 짜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은 계속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한 대접의 물밖에 안 되면 고통을 겪지만, 스스로 강물이 되면 더는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으며 오롯이 붓다를 생각하였다. 탑에 이르러서는 기러기가 한 줄로 날아가듯 나란히 서서 합장하며 탑 주위를 돌았다. 쿠시나가르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으로 누워 열반에 드신 붓다의 커다란 두 발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불자님 한 분이 읊조렸다. “붓다께서는 흙길을 맨발로 걸으셨을 텐데, 때론 두려운 마음도 드셨을까요?” 우리 일행은 귀퉁이에 꿇어앉아 명상에 들었다. 저절로 침묵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얼마 남지 않은 육신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제자들의 의문을 해소해 주고자 말씀하셨다. 

“의심이 있거든 마땅히 지금 물어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대들을 위해 말하리라!” 우물쭈물하던 제자들에게 또 이르셨다. “수행자들이여, 도반에게 물어보듯 편안히 어서 질문하여라. 그리고 후회가 없도록 하라!”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을 하였다. 후회하지 말고 어서 물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조급해하지 말고 끊임없이 정진하라!”

희상 스님 부산 유연선원 주지 meine2009@hanmail.net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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