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9. 일상화된 마조선 전개-상

기자명 정운 스님

밥 먹을 때 밥 먹고 잘 땐 잠만 자라

해탈을 형이상학서 찾지만
마조는 ‘일상이 곧 선’ 강조
굳이 심산유곡 아니더라도
저잣거리에서도 수행 가능

마조의 제자 가운데 선의 일상화를 잘 표현한 대표적인 시가 있다. 

내 일상생활에 특이한 일이 따로 없으며/ 내 스스로 차별 없이 즐긴다./ 선택해서 버리고 취할 것이 별도로 없으며/ 너무 법석 떨 것도 치워 버릴 것도 없다./ 누가 주사(朱紫)라고 말하는가?/ 산과 언덕엔 티끌 하나 없는데/ 신통과 묘용은 물을 나르고 섶을 나른다.

위의 시는 마조의 제자인 방 거사(?∼808)의 선시이다. 참 진리인 진여 혹은 실상·여여함이라는 것조차 마음에 두지 않는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앞의 시 내용 중 ‘주사(朱紫)’는 붉은색의 관복으로 나라의 승은을 입은 고관대작을 상징한다. 방 거사는 명예의 상징인 관복 입은 관리보다는 일상에서의 참선을 최상으로 보고 있다. ‘금강경’ 11품이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인데, 유위복(有爲福)보다 무위복(無爲福)이 수승하다는 품이다. 방 거사는 진정한 무위복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아는 거사라고 본다. 

‘신통과 묘용[내 마음공부는]은 물을 나르고 섶을 나른다’는 표현은 중국 초기 선의 신통방술이라고 여기던 점을 극복해 일상성의 종교로 변화한 대표적인 시 구절이다. 마조가 ‘지금 그대가 견문각지한 그 불성의 작용이 바로 그대의 본심이며, 이 마음을 여의고 부처는 없다’는 사상이라고 본다. 

방거사는 요사(了事) 범부(凡夫)한 선자(禪者)로서 중국선의 최극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후대 송나라 유학자들도 이 구절에 관심을 표하며 선에 관심을 가졌다. 남북조 시대 승조(480∼560)도 ‘도가 멀리 있는 것인가? 사물에 부딪히는 것이 바로 도’라고 했으며, 육조 혜능도 ‘지도(至道)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도를 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일상성의 선이 발달한 것이 마조선 특징이라고 하지만, 이는 중국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와 유사한 내용을 보자. 마조 문하인 대주혜해는 생전에 ‘돈오요문(頓悟要門)’을 저술해 스승 마조에게서 “월주에 큰 구슬이 있는데, 둥글고 투명하며 자유자재하여 걸리는 바가 없구나”라고 칭찬을 받은 인물이다. 혜해가 머무는 지역의 원율사가 찾아와 물었다. 

“화상께서는 수행할 때, 공력을 들이십니까?”/ “네, 공력을 들입니다.”/ “어떻게 공력을 들이십니까?”/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곧 잠을 잡니다.”/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 모든 사람들도 스님처럼 공력을 들인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와 다릅니다.”/ “어찌하여 다르다고 하십니까?”/ “그들은 밥 먹고 있을 때 먹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또 잠을 잘 때도 자지 않고 이런저런 꿈을 꿉니다. 그러니 나와 같지 않습니다.”

대체로 우리들은 해탈의 묘미를 추상적인 문자나 교묘한 형이상학 속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밥 먹을 때 오롯이 밥을 먹고, 잠잘 때 오롯이 잠자는 그 현실의 일상이 바로 선인 것이다. 물 긷고 땔나무 줍는 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선이 있는 것이다. 동시대 선사인 현각도 ‘증도가’에서 ‘행도 선이요, 좌 또한 선이다. 말할 때나 침묵할 때, 움직일 때 조용히 있을 때 등 언제나 신체가 편안하다’고 하였다. 관념적인 일시적 자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일상 자체가 혁신이다. 자기의 본래심에서 전개하는 매사가 바로 불성의 전개요, 평상심의 전개이다. 곧 밥 먹고, 차 마시며, 대소변 보는 일상생활이 모두 본래심의 창조적 삶으로 이어 나가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일상에서의 선수행이 정립된 때가 당나라 때의 선이요, 마조의 선이다. 

마조 문하는 굳이 심산유곡을 고집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저잣거리에서 수행한 제자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제자가 반산보적(盤山寶積, ?∼?)이다. 보적은 우연히 시장에 들어갔는데, 정육점에서 상인이 방금 잡은 돼지고기를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손님이 와서 ‘가장 좋은 부분에서 잘라 한 근만 달라’고 하자, 상인은 ‘어느 부위인들 최상품 아닌 곳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보적은 상인과 손님의 일상적인 대화를 듣고 깨달음을 이룬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