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귀 같은 세상에 던져진 경전 속 아귀들 이야기

  • 불서
  • 입력 2024.02.05 17:49
  • 호수 1715
  • 댓글 0

아귀
앤디 로트먼 지음/이종복 옮김/담앤북스/288쪽/1만8000원

불교 경전 속 아귀(餓鬼)는 늘 굶주리는 귀신이다. 몸은 태산만 하고 입은 바늘구멍과 같이 작아서 고춧가루 하나 넘기기 힘들다. 식탐은 끊임없이 증폭되고 이에 비례해 고통이 더욱 증가하는 끔찍한 딜레마가 아귀의 숙명이다. 주체할 수 없는 식욕에 비해 그 식욕을 조금도 만족시킬 수 없는 몸은 탐욕의 시대에 욕망에 목말라하는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가장 최악인 지옥도, 굶주림의 고통이 심한 아귀도, 짐승과 벌레들이 사는 축생도, 노여움이 가득한 아수라도, 인간이 사는 인도, 뛰어난 능력과 행복이 가득한 천도를 윤회한다. 육도 중에서 아귀도는 삼악도(三惡道), 인도는 삼선도(三善道)의 영역에 속하지만, 우리 사는 세상이 아귀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 경계가 모호하다. 

책 ‘아귀’는 초기 경전인 ‘백연경’의 내용 중에서 ‘아귀’에 관한 이야기들만을 간추린 것이다. ‘백연경’은 열 개의 장에 열 개씩, 백 가지의 고대 인도 불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인데 이 중 다섯 번째 모음집에 담긴 아귀들의 이야기다.

아귀는 귀신이다. 정확히는 망자(亡者)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 불교에서 묘사하는 아귀들의 모습뿐 아니라 당시의 윤리관과 사후관까지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아귀는 인간으로 있을 때 저지른 악한 생각과 행동들이 원인이 돼 아귀라는 과보(果報)를 받은 것이다. 따라서 아귀는 육도윤회의 한 부류이며 귀신의 존재지만 하나의 병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아귀는 범어로 ‘matsarya’이며 해악(害惡)을 뜻한다. 이를 저자는 비열함, 쩨쩨함을 뜻하는 ‘meanness’로, 역자는 다시 이를 간탐(慳貪)으로 번역했다.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다는 뜻이다.

초기불교 수행법을 집대성한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는 아귀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이가 어떠한 재물을 이미 확보했든 확보하지 않았든 간에 그것을 감추는 것이다. 간탐은 다른 이들과 그 재물을 나눠 가지지 않는 것을 기능으로 한다. 따라서 그 마음의 상태는 쩨쩨함으로 나타난다. 이는 정신적인 기형의 상태이다.”

책은 아귀에 대한 설명, 아귀에 대한 그림, 연구 기록으로 시작해 사탕수수 방안간, 음식, 마실 물, 똥 단지, 목건련, 웃따라, 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 상인, 자식들, 잠발라 등 10가지 이야기을 담고 있다. 

탁발수행자를 아귀라고 비난하며 인색하게 살았던 오백 명의 상인들이 죽은 뒤 털로 뒤덮인 몸과 바늘귀만 한 입, 산만 한 배를 가진 아귀가 된 이야기, 임신한 두 번째 부인에게 독약을 먹여 유산하게 만든 결과 다음 생에 아귀로 태어나 매일 밤낮으로 다섯 아이를 낳고 먹는 첫 번째 부인의 사연까지, 아귀가 되는 원인은 탐욕뿐만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삶이나 청정하지 못한 행위, 시기와 질투 등 다양하다.

책 속 아귀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제 모습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귀는 이 시대 화두나 다름없다. 아귀를 잘 알고 그 악한 습성을 잘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규 전문위원 kimh@beopbo.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