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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생명 죽이는 문화재 안 된다

  • 데스크칼럼
  • 입력 2024.02.13 12:02
  • 수정 2024.02.13 12:08
  • 호수 1716
  • 댓글 0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조사대상 포함
‘투우’ 금지 등 전세계 추세에도 역행
다른 존재 고통 내 고통으로 공감하는
‘자타불이’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

문화재청이 ‘소싸움’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조사 대상에 포함하면서 동물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문화재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도 국가무형유산지정조사 계획’에 따르면 올해 새롭게 무형문화재 지정이 검토되는 8가지 종목 가운데 ‘소싸움’이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동물학대 지적을 받고 있는 소싸움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문화재청도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지자체가 조사 대상으로 신청하면 검토하게 돼 있다”고 책임을 넘기며 “조사가 진행되더라고 문화재 지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곧이어 “동물학대 논란 등에 대해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 조사와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통해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공식 자료도 배포했다. 

동물학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소싸움과 결이 비슷한 ‘투우 경기’는 본고장인 스페인에서도 찬반을 둘러싼 격한 논란의 대상이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투우 경기가 빈번했던 중남미대륙의 멕시코, 콜롬비아 등 여러 국가에서는 이제 법원에 의해 중단명령이 내려지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잔인하게 소를 죽이는 투우가 비윤리적인 동시에 동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결과다. 

동물권은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과정에서 그 개념이 ‘비인간’으로까지 확대되며 등장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도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인권에 비견되는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다. 동물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수용 수준이 아직은 보편적이랄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동물의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학대에 대한 거부반응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동물권’은 1975년 윤리철학자인 피터 싱어에 의해 촉발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불교에서는 일찍이 비인간인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가하지 말 것을 교리로 분명히 가르쳤다.

불교사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결집된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저들은 나와 똑같고 나도 저들과 똑같다라고 생각하여 나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서 결코 다른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을 (시켜) 죽게 해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담마파다’에서도 ‘모든 생명은 폭력에 떨고, 모든 생명은 죽음을 겁낸다. 그들을 나와 똑같다고 생각해서, 결코 죽여서는 안 된다. 죽게 해서도 안 된다’고 거듭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애를 강조했다.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불살생의 계율은 단순히 악행을 금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와 너의 존재와 생명의 존귀함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이해하는 ‘자타불이’의 가르침은 한량없는 자애와 공감을 모든 중생에게 확장하고 있다. 이미 2600여 년 전, 동물권 그 이상의 윤리를 천명한 셈이다. 이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의 종교가 신과 인간 그리고 동물로 이어지는 수직, 종속적 관계를 강조하며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는 ‘영혼’ ‘영성’이 없다고 정의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차별하는 것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지점이다. 이런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간을 두고 있는 서구에서조차 투우 경기와 같이 동물을 유희로 삼는 행위들이 사회적으로 퇴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싸움’에 대한 무형문화재 검토가 시도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특히 ‘산천어 축제’ ‘송어축제’ ‘오징어축제’ 등 ‘축제’라는 이름으로 동물의 고통을 포장하는 정책은 이제 멈춰야 한다. 
 

남수연 국장
남수연 국장

‘숫타니파타-자애의경’에서는 ‘어떤 살아 있는 존재들이건,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태어난 것이나 태어날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라’고 축복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께서 2600여 년 전 설하신 오래된 미래이자 21세기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자애다.

namsy@beopbo.com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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