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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 시대 이규보- 마늘, 파는 어찌  끊었으나 고기 끊기 힘들어라

‘고기 맛’ 향한 욕망 버려야 ‘정법 맛’ 볼 수 있어

고위 공직자가 즐겼던 소·양고기…관직 물러나면 먹기 쉽지 않아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육류 소비 방식은 사육보다 사냥이 많아
이규보·이색 등 불교 영향으로 자발적인 육식 금지 풍조도 보여

19세기 화로 곁에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 모습을 성협의 '고기굽기', 그림에서 굽는 고기 역시 소고기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19세기 화로 곁에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 모습을 성협의 '고기굽기', 그림에서 굽는 고기 역시 소고기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내가 전에 오신채를 끊었을 때, 소고기도 함께 끊었지만, 마음만 그러했을 뿐 눈앞에 고기가 보이면 참지 못하고 먹어 왔다. 이제야 고기가 앞에 보여도 먹지 않게 되었다.”

고려 시대 이규보(1168~1241)가 그의 ‘동국이상국집’ 단우육(斷牛肉)이란 시의 서두에 언급한 내용이다. 고기 끊을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 왔지만 막상 제대로 실천을 못해 오다가 이제야 고기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단계가 됐기에 이 시를 짓게 됐다는 고백이다. 이규보는 시를 짓기 전 ‘처음 오신채를 끊고서 (시를) 짓다’라는 시, ‘시단오 신유작(始斷五辛有作)’에서 오신채 끊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음을 피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육류를 선호 혹은 집착하는 것일까? ‘능가경’은 그 이유를 고기 맛에 대한 욕망(貪肉味)이라고 언급한다. 육식은 또한 성적 욕구도 일으키며(食肉能起色力) 따라서 고기 맛을 버리는 것(捨肉味)은 정법의 맛을 보는 것(聞正法)이라고 설한다. 

고려시대 선조들은 어떤 종류의 육식을 했으며 어떤 육류를 가장 선호하였을까? ‘고려사절요’ 성종 조에는 “왕이 서도(西都)에 행차하였는데 주·현의 부로(父老)들이 왕에게 소고기와 술을 바쳐 술은 군사들에게 하사하고 소고기는 돌려줬다”고 한다. 앞서 이규보의 ‘단우육’이란 시 제명에서도 보듯 고려시대 고급육이자 가장 선호되는 육류는 단연 소고기였다. 소고기에 대한 선호는 단지 고려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도 여전하다.

‘동국이상국집’에는 이규보가 실생활에서 경험한 다양한 육류생활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이규보는 ‘위심시희작(違心詩戱作)’이란 시에서 “배가 불러 그만 먹으려 하면 어린 양고기(羔肉)가 나오고 목이 아파 그만 마시려 하면 술이 가득한 잔을 받는다”라고 하고 있다. 

또 ‘사최천원종번혜양파궤병모(謝崔天院宗藩惠羊羓饋病母)’라는 시에서 양고기포(羊羓)로 병든 노모를 봉양한 내용을 전한다. 일 년여 동안 병석에 누운 노모에게 이규보는 죽순요리·생선국·생선회 등 갖가지 좋은 음식으로 봉양했으나 노모의 입맛이 점점 까다로워져 한 번 드렸던 것은 토하시니 식사 마련이 쉽지 않음을 토로하고 있다. 하루는 무슨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가 여쭈었더니 “생선은 싫고 양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시는데 양고기를 구하려 해도 갑자기 구하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천원(天院) 최종번(崔宗藩)이 보내준 양고기포가 있어 이를 잘라 국을 끓여 술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드릴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동문선’에는 고려 후기 승려인 식영암(息影庵)의 ‘월등사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에 죽순과 소고기, 양고기, 사냥동물 고기를 비교한 내용이 전한다. 이 글은 죽순의 뛰어남을 주로 언급한 글인데, 죽순을 삶은 다음 구우면 향기롭고 달고 연한 죽순요리가 되어 입에 맞고 뱃속은 살찐다고 하면서 누린내 나고 비린내 나는 육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식재료라고 극찬하고 있다.

‘동국이상국집’ 슬견설(虱犬說)에서는 개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규보의 한 지인은 “어제 저녁에 한 불량배가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 죽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참혹하여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하면서 자신은 맹세코 앞으로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당시 고려인은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 사육동물의 고기와 그 고기를 말린 포 등을 식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265~1268년 침몰했다고 추정하는 고려 시대 태안 마도 3호선에서 출수된 품목에도 개고기포가 보인다.

소고기와 양고기와 같은 육류는 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관계되는데 이규보나 고려 후기의 목은 이색과 같은 고위관직을 지낸 이들도 일단 관직에서 물러나면 소고기와 양고기를 먹기가 쉽지는 않았다는 토로를 그들의 문집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소고기나 양고기와 비교하여 돼지고기와 개고기는 조금은 더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던 육류였던 듯하다. 그렇지만 육류 자체는 종류를 막론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특히 일반 백성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선화봉사고려도경’ 하인(皂隸), 방자(房子)조에는 고려의 고기식용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중국 사신인 서긍은 사신의 관사에서 심부름하는 방자들이 남는 육류들을 싸주면 여름철이라 육류 음식이 상하고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먹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간다고 하고 있다. 또 고려는 봉록이 아주 박해서 쌀과 채소만을 지급하는 관계로 고기를 먹는 일이 드물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려인의 육식은 사육동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일찍부터 동물사육이 발달한 중국과 달리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육류소비에서 사냥동물의 비중이 높은 것이 우리나라의 사정이었다.

고려 후기 이색의 ‘목은시고’에는 염동정이란 지인이 “늙으신 양친에게 나누어 드리다 보니 양이 적어졌다”며 이색에게 노루고기를 보냈는데 이색은 “햅쌀밥에 아주 잘 어울리는 반찬”이라 하면서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목은시고’에는 생고기 노루뿐만 아니라 사슴이나 노루고기를 말린 ‘포’의 형태로 더 자주 언급되고 있다. 보관이 어려운 당시 사정에서 육류는 주로 말린 고기 즉 포의 형태로 만들어져 이용되었다.

한반도에서 삼국 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육류로 이용되는 사냥동물의 비중은 사육동물보다 높은데 그 주류 동물은 사슴류, 멧돼지, 꿩 등이다. 멧돼지에 비해 사슴류 동물이 사냥동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선류도 자주 언급되는 식재료이다. 고려 시문집에는 생선회에 관한 언급도 드물지 않은데 주로 민물고기 종류이다. 이색은 ‘목은시고’에서 서경(西京), 즉 평양 대동강의 물고기들이 사시사철 손님접대에 이용되었다고 하면서 일찍이 이시민의 집에서 맛보았던 평양의 여름철 생선포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고려인들이 생선회를 먹는 방법은 ‘실처럼 가늘게 썬 생선회에 마늘과 파 등 매운 채소와 장(醬)을 곁들여 먹는 것’이다. 중국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민물회를 바람에 날아갈 듯 가늘게 썰어 먹는 방식은 고려와 조선 후기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행 기록인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 의 기록(1748년 2월 12일~5월 2일)을 보면 이 시기 일본은 생선회를 무척 굵게 썰어 먹었던 듯하다.

고려인들은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 사육동물의 육류와 사슴류, 멧돼지, 꿩, 토끼 등 사냥동물을 통한 육식생활을 향유했다. 인도나 일본과 같은 종교상의 이유로 육식이 엄격히 금기시되는 사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으로 이규보나 이색의 경우에서 보듯 자발적으로 불교 음식규정을 지키는 풍조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색의 ‘목은시고’의 시구가 고려 시대 당시의 육식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집집마다 채소만 상에 가득하고 (素食家家菜滿盤) 가난한 살림에 어쩌다 건어와 젓갈을 구경할 뿐(乾魚臭醯雜寒酸)”

공만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kms3127@hanmail.net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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