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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고대불교-삼국통일과 불교(69) (8) 의상과 화엄종의 사회적 성격(25)

균여는 의상 계승하며 화엄종 보현신앙 대중화와 국제화에 크게 기여

60화엄경과 80화엄경의 입법계품 단독 서술한 것이 40화엄경
40화엄경에만 담긴 보현행원찬, 균여가 향가로 지어 크게 확산
대각국사 의천이 화엄종 개혁하며 균여의 불교 신랄하게 비판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균여전 병서 중에서 첫번째 장과 두번째 장 영인본.[동국대 불교학술원]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균여전 병서 중에서 첫번째 장과 두번째 장 영인본.[동국대 불교학술원]

앞서 의상의 낙산사 창건연기설화에서 보여준 관음진신 친견의 구도적 신앙의 경전적 근거는 ‘화엄경 입법계품’ 특히 796~98년에 한역된 ‘40권화엄경’이었는데, 이 경전은 화엄종 4조로 추앙된 징관이 주석한 ‘정원화엄경소’10권 ‘보현행원품별행소’1권과 함께 799년 범수에 의해 전래되어 신라 불교계에 유행하게 되었음을 추정하였다. 그리고 고려초기 균여가 징관의 ‘보현행원품별행소’에 의거하여 ‘보현행원가’11수를 지었고, 고려후기 체원이 ‘정원화엄경소’에 의거하여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2권 ‘화엄경관음지식품’1권을 저술한 것은 화엄신앙 가운데 특히 보현신앙과 관음신앙을 유포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임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었다. 이번 회에서는 약간 중복되는 내용이지만, 먼저 화엄신앙에서의 ‘입법계품’의 의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이어 균여의 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고려시대의 화엄신앙, 특히 보현신앙과 관음신앙의 전개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낙산사 창건연기설화의 성립배경에 대한 이해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하여 보기로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역 ‘화엄경’3본 가운데 ‘40화엄경’(일명 정원본화엄경)은 ‘60화엄경’과 ‘80화엄경’의 ‘입법계품’에 해당되는 것인데, 특이하게도 다른 2본의 ‘화엄경’과 마찬가지로 ‘대방광불화엄경’을 정식 명칭으로 하고 있다. ‘40화엄경’은 카슈미르 지방 출신의 반야(般若,Prajňā)가 중심이 되어 산스크리트 텍스트를 한역 한 것인데, 다른 2본의 ‘입법계품’과 큰 틀에서는 같으나, 내용이 크게 증보되어 있다. 이 경전의 주제는 문수보살의 권유로 발심한 선재 동자가 52인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마지막으로 자비의 상징인 보현보살을 만나 진리의 세계인 법계를 증득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러한 법계를 향한 행을 ‘입법계품’에서는 “보현행(普賢行)”이라고 표현하였다. ‘40화엄경’에 대하여 ‘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라는 부제를 붙여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인 법계에 깨달아 들어가기 위한 보현의 행(行)과 원(願)을 열어 보인다는 뜻을 잘 나타내주었다. 특히 제40권에서는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의 교설을 담고 있는데, 특히 권말에는 ‘보현행원찬(普賢行願讚,Bhadracaryāpraṇidhāna)’이라는 게(偈)가 부가되어 있는데, 이 게는 보현보살이 보현의 행원을 개설하고 그 이익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보현의 10대원은 (1)제불을 예경함 (2)여래를 칭찬함 (3)널리 공양을 닦음 (4)업장을 참회함 (5)공덕을 수희함 (6)전법륜을 청함 (7)부처가 세상에 주할 것을 청함 (8)언제나 부처를 모시고 배움 (9)항상 중생에 수순함 (10)널리 그리고 모두를 회향함 등이다. 이 ‘보현행원찬’은 티베트역 ‘화엄경’에도 실려 있으나, ‘60화엄경’과 ‘80화엄경’에는 없다. 또한 이 게만의 독립된 산스크리트 텍스트도 전하여 오는데, 이것만을 별도로 한역 된 것으로는 각현(覺賢)역의 ‘문수사리발원경(文殊師利發願經)’과 불공(不空)역의 ‘보현보살행원찬(普賢菩薩行願讚)’이 있다. 또한 티베트역의 이본도 전해지고 있으며, 용수와 세친 등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석도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널리 유행되고 있었다. 

‘40화엄경’에서는 이 게를 특히 주목하여 “보현광대원왕청정게(普賢廣大願王淸淨偈)”라 부르고 있으며, 이 경전의 한역에 참여했던 징관도 이 게를 특히 극찬하여 ‘보현행원찬’이 “약화엄경(略華嚴經)”이고, ‘화엄경’이 “광보현행원찬(廣普賢行願讚)”이라고 하였다. 징관이 ‘40화엄경’을 주석한 ‘정원화엄경소’ 10권 이외에 권제40 보현행원 부분만을 별도로 주석한 ‘보현행원품별행소’ 1권을 저술하였음은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그리고 징관의 화엄을 계승한 종밀도 징관의 주석서에 대한 복주(復注인 ‘화엄행원품소초’ 6권을 저술하여 보현신앙을 크게 성행케 하였다. 이 징관과 종밀의 주석서들은 700년대 말에 신라에 전해와서 크게 주목받았는데, 의상의 ‘일승법계도’에 대한 그 법손들의 주석을 모은 ‘법계도총수록’에서 징관의 ‘정원화엄경소’와 함께 종밀의 ‘화엄행원품소초’가 모두 인용되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징관의 주석서가 별도로 사경되거나, 간행된 것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언해(諺解)되거나 새로운 해석이 가하여지기도 하는 등 매우 중요시되었다. 일본에서도 징관의 저술들이 천태종의 엔닌(圓仁)에 의해 전해져서 주목받았는데, 특히 조동종에서는 “보현10대원의 게 가운데 참회문 4구만을 중요시하여 널리 유포시키고 있었음을 보아 인도와 티베트를 뛰어넘어서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널리 성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초기 균여가 징관의 ‘보현행원품별행소’에 의거하여 ‘보현행원가’11수를 향가로 지어 보현신앙을 크게 유행시킬 수 있었고, 또한 그 향가가 한역되어 중국에까지 전래되어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실로 ‘40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이 성행되고 있던 동아시아 불교권의 분위기와 무관할 수 없었다.

‘보현행원가’를 지은 원통수좌 균여(均如,923~973)는 고려초기 화엄종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균여의 불교 업적은 3분야로 압축하여 정리될 수 있는데, 첫째 화엄종단의 통일, 둘째 화엄교학체계의 재정리, 셋째 향가를 통한 보현신앙의 대중화 등이다. 첫째는 신라말기 후삼국의 정치적 분열에 상응하여 화엄종단이 고려의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와 후백제의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파로 나뉘어 대립 갈등하게 되었는데, 균여는 광종(950~975)의 불교교단정책에 부응하여 북악파의 입장에서 남악파를 통합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북악파의 영수인 희랑의 법손인 균여의 화엄종단 통합정책은 일단 성공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균여 이후 교종의 주류로 등장한 화엄종에서 남·북악파의 이름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기치로 내건 선종의 대두와 비판에 대응하여 화엄종의 교학체계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중국의 지엄과 법장, 그리고 신라의 의상의 저술들을 주석하고 강의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결과 10여 종의 저술을 남기었다. 그의 화엄교학에 대한 견해가 광종대 시행되기 시작한 승과에서 정통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균여 화엄교학의 영향과 권위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셋째는 향가로 지은 ‘보현십원가’가 민간의 담벼락에 쓰여있었고, 병자의 치료에도 활용되었으며, 한역 되어 중국에까지 전해져서 높이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보아 화엄종의 보현신앙의 대중화와 국제적 교류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균여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자료로서는 다행히 그의 행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전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균여의 사후 100여 년 뒤에 혁련정(赫連挺)이 찬술한 ‘대화엄귀법사주원통수좌균여전(大華嚴歸法寺主圓通首座均如傳’(이하 줄여서 ‘균여전’으로 약칭)이다. 그런데 ‘고려대장경’ 보유판 치함(治函)에 수록되어 있는 균여의 ‘석화엄교분기원통초’권10 끝의 19장에서 28장까지 10장의 경판으로 이루어진 ‘균여전’에서는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균여전병서(大華嚴首座圓通兩中大師均如傳幷序”라고 표제가 붙어있으나, 행장 중의 표제가 정확한 것으로 보아 그것에 따른다. 

균여는 화엄종에 소속된 귀법사의 주지였으며, 법호는 원통, 최종 승계는 교종의 두 번째인 수좌에까지 올랐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화엄종 소속 승려로서 왕사, 이어 국사를 책봉 받은 인물은 보원사의 탄문(坦文,900~975)으로서 칙명을 받아 탑비를 수립하게 되었으나, 왕사나 국사를 책봉 받지 못한 균여에게는 탑비가 세워지지 못하였다. ‘균여전’은 1074년 신중경주주대사(神衆經注主大師) 창운(昶雲,1031~1104)이 균여의 행장을 기록한 고본 1권을 전진사(前進士) 혁련정에게 전해주면서 전기를 지을 것을 부탁하여 찬술하게 되었는데, 혁련정은 창운이 제공한 자료 이외에도 강유현(康惟顯)이 지은 균여의 전기, 그리고 고정(高挺)이 지은 ‘감로원기(甘露院記)’ 등을 참고하여 1075년 정월에 탈고하였다. ‘균여전’의 찬술에 관여한 인물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창운이었는데, 등관승통의 승계를 받은 고려중기 화엄종의 고승으로서 경덕국사 난원(爛圓,999~1066)의 문도였으며, 또한 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101)의 선배로서 의천이 젊었을 때 그에게 배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영통사대각국사비’의 문도 명단에는 의천의 문도로 열거되어 있다. 창운은 신라 말기의 전란기에 성립된 위경(僞經)으로 추정되는 ‘화엄신중경(華嚴神衆經)’을 주석한 것을 보아 균여의 불교를 계승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의천이 문종의 4자로서 화엄종단을 영도하게 되자, 선배이면서도 오히려 그의 문도로 간주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의천은 화엄종을 개혁하면서 균여의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불전 간행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에서 일체 제외시켰다. 그에 따라 균여가 중시하였던 ‘신중경’의 불교 전통도 이어지지 못하였는데, 전란기의 산물인 신중신앙은 더 이상 불교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천의 불교(화엄종의 개혁과 천태종 개창) 문제는 뒤에 별도로 상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균여전’은 서(序)와 본전(本傳), 그리고 후서(後序)로 구성되었다. 본전은 10장으로 나뉘었는데, (1)탄생의 영험(降誕靈驗分) (2)출가하여 가르침을 구함(出家請益分) (3)자매가 똑같이 현명함(姊妹齊賢分) (4)올바른 뜻을 세워 종파를 통합함(入義定宗分) (5)많은 논서를 해석함(解釋諸章分) (6)사물의 마음을 움직여 신이한 기적을 행함(感通神異分) (7)노래를 지어 세상을 교화함(歌行化世分) (8)노래를 번역하여 덕을 드러냄(譯歌現德分) (9)감응을 통하여 마귀를 항복시킴(感應降魔分) (10)성인의 죽음(變易生死分) 등이다. 균여의 행적을 10문으로 나눈 것은 화엄학에서의 꽉 찬 수(滿數)인 10으로 분류하여 서술하는 예를 따른 것으로써 앞서 최치원의 ‘법장화상전’과 ‘의상존자전’의 체제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균여전’의 서문 모두에 “‘간다뷰유하(Gaṇḑavyūha, 巘拏名+庚賀)’의 10만 게송이 천축에서 부흥하게 된 것은 용수에 말미암은 것이요, 동방에서 처음 불려지게 된 것은 의상에 말미암은 것이요, 고려에서 비로소 널리 불려지게 된 것은 수좌(균여)에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아 ‘균여전’ 편찬자가 의거한 ‘화엄경’은 ‘입법계품’을 별도로 한역한 ‘40화엄경’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화엄경’의 전통을 계승한 균여의 업적을 인도의 용수와 신라의 의상에 비견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도 확인되는데, 본전 6장에서 균여의 신이한 행적을 서술하는 가운데서 의상의 제7화 신으로도 칭송되고 있었음을 보아 고려 초기 화엄종에서 의상의 화엄 전통을 계승한 균여가 차지한 역사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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