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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의 권위에 맞선 치열한 비판 의식

  • 불서
  • 입력 2024.02.16 21:03
  • 수정 2024.02.21 16:00
  • 호수 1717
  • 댓글 1

비움과 금강경
시현 스님 역주 / 사유수 / 266쪽 / 2만원

남들이 칭찬할 때 덩달아 칭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들이 돌 던질 때 함께 던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들이 칭찬하는 일을 전면 비판하거나 남들이 비난할 때 막아서는 일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면 어렵다. 하물며 오랜 세월 받들어 온 경전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다.

‘불교 사상사는 개념 왜곡의 역사였다’는 저자는 대승불교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 널리 독송 되는 ‘금강경’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비판 수준과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초기 경전과 대승 경전에 대한 분석과 언어학, 해석학, 논리학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저자 시현 스님은 ‘대승은 끝났다’ ‘비구 급선무’ 등 저술로 대승불교를 통렬히 비판해 왔다. 대승이 근본불교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그 사상은 근본불교와 일치하는지, 수행 방법과 결과물은 근본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간화선 수행 내용과 깨달음은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법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등 독한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 비판은 ‘금강경’과 대승의 공사상을 향하고 있다. 저자가 밝히듯 처음부터 ‘금강경’에 비판 의식을 가졌던 건 아니다. 1997년 출가 초기 ‘금강경’에 심취했고, 매일 ‘금강경’을 21번씩 100일 동안 암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경전을 접하면서 근본 경전(니까야)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롯이 전승했음을 알았고 이를 연구해 부처님 말씀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대승 경전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를 담기도 하지만 심각한 변형과 왜곡을 초래했음도 간파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비담마 철학이라는 초기불교에 대해서도 대승불교만큼이나 비판한다. 예컨대 아비담마의 3대 과오로 법의 자성화, 심의식의 동일시, 명색(名色)에 대한 오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법의 자성화를 핵심적으로 다루면서 그것이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격발시켰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승의 공사상은 아비담마 철학의 다원론적 실체인 자체성질(自性)을 부정했지만 비었음(空)의 추상적인 존재 상태인 공성(空性, 빈 상태)이라는 새로운 일원론적 실체를 상정하는 모순에 빠졌다. 또 공의 존재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관념적 일원론의 실체들인 진여, 불성, 일심, 여래장 등과 동의어로 합일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했다.

대승불교의 시조격인 용수에 대한 비판에도 가차 없다. 공을 무리하게 확대 해석하고 공성을 앞세워 윤회와 열반을 동일시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번뇌가 열반이다’ ‘번뇌가 곧 보리다’ ‘생사와 열반이 하나다’ ‘주색잡기가 다 반야행이다’ 등등 궤변을 양산하게 됐다는 것. 이렇듯 공성, 연기, 윤회, 열반의 동일시는 아비담마 철학에서 심의식의 동일시와 더불어 후대 불교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 관념적 일원론의 실체로 왜곡된 공성은 브라만교의 신성과 같은 위상을 갖게 돼 대승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불교와 유일신교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서 ‘진리는 하나인데 표현만 다를 뿐’이라는 견해에 도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책의 구성은 근본 경전에서 유일하게 공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맛지마니까야의 ‘소공경(小空經)’과 ‘대공경(大空經)’, 대승 경전인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새롭게 해석한 번역문과 상세한 해설 부분, 그리고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끝마무리’로 이뤄졌다. 저자가 공의 다른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의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본적인 개념과 번역어를 찾아내는 방법인 격의법(格義法)을 활용하는 점과 ‘열반→꺼짐’ ‘명색→명칭과 방해물’ ‘사티→상기’ ‘삼매→고정됨’ 등 기존 불교 용어 대신 각각의 분석을 통해 새로운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또 ‘금강경’과 ‘반야심경’의 새로운 번역문도 자못 흥미롭다. 특히 시종일관 전통의 무게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치열한 비판 의식과 진리를 향한 진지함은 숙연하게까지 한다.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검증돼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외면과 침묵은 저자가 주장하는 대승불교의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며 불신을 확산시킬 뿐이다. 이제 대승을 연구하는 학자와 학승들이 답할 차례다.

이재형 대표 mitra@beopbo.com

[1717호 / 2024년 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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