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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시대 사찰 채식만두, 산함(酸餡)

한국 만두 기원 고려시대 사찰에 있다

이규보, 수기선사에 받은 만두 ‘혼돈’ 모양·요리법 상세히 설명
중국·일본 불교문헌에서도 채식만두 식용함을 살펴볼 수 있어
고려 사찰, 채식만두 ‘혼돈·산함’ 문화 향유했을 것으로 추정돼

북송과 맞닿은 시기부터 고려 사찰은 채식 만두를 향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동방문화대학원대 고려음식연구소에서 재현한 ‘혼돈'.
북송과 맞닿은 시기부터 고려 사찰은 채식 만두를 향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동방문화대학원대 고려음식연구소에서 재현한 ‘혼돈'.

고려 후기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은 ‘목은시고’의 ‘금주음(衿州吟)’이란 시에서 관악산 신방암 주지스님으로부터 만두를 얻어먹고서 만두에 대한 감흥을 시로 읊고 있다.

신도가 스님께 공양하는 것이 상례인데(檀越齋僧是故常)/ 속인이 스님의 대접을 받으니 송구한 일일세(山僧饗俗可驚惶)/ 눈처럼 쌓인 만두를 찌니 그 색이 한결 더 하얗고(饅頭雪積蒸添色)/ 만든 두부를 끓이니 그 향기가 더욱 좋구나 (豆腐脂凝煮更香)

메밀가루가 아닌 귀한 하얀 밀가루로 빚은 만두였을 것이다. 밀가루로 빚은 하얀 만두를 찌니 그 색깔이 더욱 하얗게 되었고 여기에 두부탕까지 곁들이니 당시로서는 귀하디 귀한 음식 조합이었을 것이다.

이색보다 150여 년 앞선 인물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또 다른 만두류 음식인 혼돈(餛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보다 상세하게 혼돈에 관한 서술을 하고 있어 고려 시대 만두류 음식을 파악하는데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규보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승려인 수기선사(守其禪師)로부터 혼돈을 얻는다. 수기선사는 혼돈을 이규보에게 보내면서 편지에 아침 식사에 곁들여 드시라는 언급을 하고 있는데, 이규보는 “아침에 먹어도 맛있고 낮에 먹어도 진미이다(晨朝饞口非唯美 晝日飢腸亦足珍)”라고 하고 있으며 “권세있는 집안의 수륙진미에 못지 않다(却任豪家水陸珍)”고 그 맛을 칭찬하고 있다.

이규보는 그의 시에서 수기선사가 보내준 혼돈에 대하여 그 모양이나 요리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대개 만두의 형태는 동그란 모양이고 한입에 먹기에는 다소 큰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찌는(蒸) 방식으로 요리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규보가 묘사하고 있는 불교사찰 채식혼돈의 모습은 이와는 꽤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규보는 불교 채식혼돈이 작고 네모난 형태를 가지고 있어 일반 만두처럼 공처럼 동그란 형태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細尙成方非走玉). 또한 요리법에 있어서도 찌는 방식이 아니라 물을 넣고 푹 끓이는 형태(爛烹溫飽氣廻春)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규보가 사용한 한자 용어, 난팽(爛烹)은 흐물흐물할 정도로 푹 끓이는 요리법을 의미한다. 즉 고려시대 사찰의 혼돈만두는 작고 네모나고 물을 넣어 아주 푹 끓이는 만두류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규보가 먹은 혼돈만두는 불교승려인 수기선사가 보내준 혼돈이라는 사실을 통해 이 혼돈이 고려 사찰에서 드시는 채식 혼돈임을 알 수 있는데, 사찰의 채식 혼돈에 대한 언급은 중국 불교문헌을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다.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활동했던 당나라 승려 혜상(惠詳)이 698~714년 사이에 찬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에는, “도홍(道弘)이라는 사미(沙彌)가 승려들을 위해 혼돈을 요리했는데 대중들이 먹기도 전에 몰래 혼돈 한 그릇을 먹어 철원(鐵圓) 지옥에 떨어져 입이 모두 불에 데어 문드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에 등장하는 이 설화를 통해 당나라 초기 사찰에서 이미 혼돈을 식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말기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 승려 자각대사(慈覺大師) 엔닌(圓仁, 794~864)은 그의 구법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840년 산동에 위치한 장보고(張保皐, ?~846)의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의 동지절(冬至節) 모습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날 승려들은 서로에 대한 덕담과 더불어 아침에 죽을 공양하면서 혼돈과 과자를 먹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고려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채식만두는 산함(酸餡)이다. 산함에 관한 내용은 고려 시대 수선사(修禪寺) 2세인 혜심선사(慧諶, 1178~1234)의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을 통해 볼 수 있다. 혜심선사는 자신의 어록에서 북송 오조법연선사(五祖法演禪師, 1024~1104)의 법어를 인용하면서 채식만두를 의미하는 ‘산함(餕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오조법연선사의 ‘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의 해당 문장에서는 ‘산함’이 아니라 ‘산도(酸饀)’라는 채식만두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법연선사가 채식만두를 의미하기 위해서 사용한 ‘산도가 혜심선사 자신이 채식만두를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한 ‘산함’과 동일한 의미의 명칭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혜심과 오조법연이 사용한 ‘산’이라는 한자의 ‘변’은 혜심의 경우는 ‘먹을 식(食)’변을, 오조법연의 ‘산’이라는 한자의 ‘변’은 ‘닭 유(酉)’변을 사용하고 있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아 고려 혜심선사는 불교 채식만두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산함(酸餡), 산도(酸饀), 준함(餕餡), 준도(餕饀)’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혼돈이나 산함을 조반 시에 먹는 모습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과 같은 북송 시기 전등문헌의 계보를 잇는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 1101)’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헌에서 영주월장산 수성지연선사(郢州月掌山壽聖智淵禪師)는 한 승려와의 문답 속에서 “어제 아침에는 혼돈, 오늘은 산함(酸豏)”을 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제 아침은 물만두인 혼돈을 먹고 오늘 아침은 콩소를 넣은 찐만두인 산함을 먹은 것이다.

불교 채식만두인 산함은 다양한 채소로 만든 소를 넣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는 콩두(豆)변이 들어있는 함(豏)이란 글자를 통해 콩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문헌들이 보여주는 사실에 근거할 때 고려는 북송과 맞닿은 시기부터 이미 불교사찰에서 ‘혼돈(餛飩)’과 ‘산함(酸餡)’ 등 채식 만두문화를 향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만두는 사찰의 채식만두류와 왕실이나 민간의 육식만두류가 문헌에 언급되고 있다. 기존의 한국 만두에 대한 논의는 고려 후기 가사인 ‘쌍화점’의 쌍화를 만두문화의 기원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문헌들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듯이 ‘쌍화점’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이규보의 시대에도 사찰 채식만두류인 혼돈이 있었고 혜심선사의 시문집을 통해서 사찰의 대표적 채식만두인 산함이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공만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kms3127@hanmail.net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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