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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마음에 드리워진 무수한 과거의 그림자들

가짜가 닳고 닳으면 투명한 얼굴 하나 드러나네

마음의 종자로 인해 사물의 단일한 형상이 단박에 나타나
한 찰나의 세계에는 무수한 과거의 환영들이 표현돼 있어
환 같은 삶은 과거에 지은 모든 업에 대한 정당한 되갚음

흐릿한 창문을 통해 사물을 알아보듯, 종자와 연관된 세계를 관찰해서 종자의 정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출처=Stockvault]
흐릿한 창문을 통해 사물을 알아보듯, 종자와 연관된 세계를 관찰해서 종자의 정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출처=Stockvault]

이번 글에서 나는 언설희론의 습기 혹은 명언종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보충하려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습기’ 혹은 ‘종자’라는 은유적 표현이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어쩌면 그 가짜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떤 환영을 가리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륵의 후예들에겐 명료하게 보였지만 우리에겐 잘 보이지 않는 어떤 환영들 말이다. 물론, 그들의 체계적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름의 의미가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그 대신 우리의 인내심을 압도하는 생소한 많은 동의어와 파생어를 연쇄적으로 익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이 증식시키는 환상의 세계를 관찰하다 보면 그 정체를 막연하게나마 감지하게 되지 않을까. 마치 흐릿한 유리 창문을 통해 어떤 사물의 형체가 점점 또렷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저 종자로부터 현현된 세계에 대해 더 사색해 보려 하고, 이전의 한 문구를 실마리로 삼아 그 사색을 이어가려 한다.

먼저 이전의 글에서 내 생각을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그 실마리만 남겨 놓았던 어떤 문구를 환기시키려 한다. “그의 식(識)이 세계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도달하기까지는 무수한 겁이 소요되었지만, 그 그림을 그리는 데는 한 찰나면 충분하다.” 내가 이 문구를 쓰고 있을 때는 사실 두 종류 인과 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전후로 이어지는 두 찰나의 짧은 시간 속에서 찰나 찰나 직전과 유사하게 흐르는 과보[等流果]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과 생을 넘어가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 과거의 원인과 다르게 무르익은 과보[異熟果]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이다. 이하에서 그에 관한 설명을 조금 덧붙여 보겠다.

미륵의 후예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조 신화에 따르면, 이 세계는 언어적 유희[戲論]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언어적 환영들이 출몰하는 환상의 세계라고 간주된다. 마치 하나의 이름이 그것과 대응하는 대상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과 흡사하게, 범부의 마음에 잠재된 명언종자로부터 세상의 온갖 환영들이 현현하는 것이다. 또 미륵의 후예들은 더 이상 극미설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지 않고, 그것도 하나의 가설로 치부한다. 극미란 우리의 생각으로 사물을 계속해서 잘게 쪼개보다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지점에서 가설된 ‘물질의 극한[色邊際]’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저 환상의 세계에선 마음이 일종의 점묘화 같은 극미들의 시공간적 배열 속에서 ‘점차로’ 어떤 형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단박에’ 하나의 꽃병을 보고 한 마리 소를 보며 한 개의 사과를 본다. 요컨대, 마음은 크거나 작거나 푸르거나 붉은 어떤 사물의 단일한 형상을 단박에 나타내는 것이다[頓現一相].(‘성유식론’ 제1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업력 때문이다. 미륵의 후예들 표현을 빌리자면, 언설희론의 습기 혹은 명언종자 때문이다.

이제 우리 관심을 심층의 마음(아뢰야식)으로 돌리면, 그곳에서는 더욱 경이로운 일들이 매 순간 일어난다. 미륵의 후예들에 따르면, 그 마음은 일시에 세계 전체의 형상을 단박에 분별하여 알아차리고 있다[頓分別知].(‘성유식론술기’ 제3권) 물론, 우리는 그런 심층 의식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런 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의 작용이 극히 미세하고 그것의 인식 대상이 극히 광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륵의 후예들과 한배를 탄 사람으로서, 다만 그들이 가짜로 시설해 놓은 교법대로 사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만약 나의 마음에 현현된 이 세계가 한 찰나 직전의 세계로부터 창조된 것이라고 관할 때라면, 나의 마음은 직전과 유사한 세계의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길 반복하는 고독한 창조자이자, 찰나 찰나 명멸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홀로 지켜보는 고독한 관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 자신이 마치 고독을 감내하는 경이로운 창조자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소감을 이전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다음에, 내가 이전에 분명히 밝히지 않은 또 하나의 경이로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에 세계의 그림이 현현할 때, 그 한 찰나 전에 이미 무수한 겁이 흘러갔다. 어떤 현상의 연원을 꼼꼼히 따지자면, 무한대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만약 나의 마음에 현현된 저 세계가 또한 나의 무수한 과거의 그림자이기도 하다고 관할 때라면, 나의 마음이 그린 순간적이고 정묘한 세계의 그림 속에 지나간 무수한 과거의 환영들이 비밀스럽게 표현되어 있음에 다시 놀라는 것이다. 이런 놀라움이 나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저 환상의 세계를 만든 진정한 환술사는 누구인가. 여기에선 ‘한 찰나에 존재했던 고독한 창조자’의 환영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대신, ‘무수한 과거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름 모를 수많은 존재들의 행위 속에 이미 미래에 보게 될 그림이 간직되어 있었다’라고 하는 가설이 힘을 얻는다. 나는 더 대담한 상상도 받아들인다. 만약 누군가 어느 날 변두리의 한 동물원에서 보았던 호랑이의 무기력한 표정에서 몇천 년 전 자기를 해했던 한 포악한 군주의 형상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어느 날 오후 시골 마을을 스치면서 보았던 어슴푸레한 수레바퀴 형상에서 우주의 인과 구조를 보았다고 말한다 해도, 나는 그의 말이 전적으로 헛소리라고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마지막으로 나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마무리해 보려 한다. 나의 말은 비록 가짜이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다면 독자들 중 누군가는 잠시 그것에 교화받았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옛 선현들이 마음과 종자의 여러 이명들을 갖가지로 시설해 놓은 의도는, 우선 그 개념을 가지고 조용한 내면으로 물러나 깊이 명상해 보라는 것이리라. 나는 그것들에 대해 사색하면서, 때론 고독한 창조자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는 단 한 명의 창조자란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마치 자신의 불가피한 운명과 화해하듯, 내가 이곳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 실은 내가 과거에 지은 모든 업에 대한 정당한 되갚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환과 같은 나의 삶이 전적으로 거짓인 것만은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줄곧 ‘가짜’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고, 앞으로도 그 길을 가려 한다. 이름[名]과 실재[實]가 서로 부합하지 않음을 쉬지 않고 관하다 보면, 그 가짜 이름들이 닳고 닳아서 끝내 사라져 버리고 그것에 가려졌던 투명한 얼굴 하나가 드러나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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