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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성제 관찰 위빠사나명상-3

기자명 일중 스님

열반 증득하면 어떤 이익 있을까

괴로움 소멸은 성스런 진리
갈애 불꽃 완전히 꺼진 상태
지혜 정점서 직접 체득 가능
범부에서 성자 단계로 도약

사성제에서 세 번째는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고멸성제(苦滅聖諦)다. 생로병사 우비고뇌 등 괴로움이 완전하게 소멸한 자리,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는 말인데, 그런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열반은 경전 속에서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가상세계나 관념의 세계도 아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지혜의 정점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증득할 수 있는 특별한 상태이다. 그럼 열반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이익과 결실이 있는가? 

열반은 팔리어로 닙바나(Nibbāna)라고 한다. 팔리어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닙바나는 ‘(불이) 꺼짐, 해탈(자유), 소멸, 지멸, 적멸, 적정, 평화, 지복’ 등 다양한 번역이 있다. 이러한 번역어들을 간단히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와 욕망, 갈애의 불꽃이 완전하게 다 꺼진 상태 그래서 고요와 적정, 평화와 지복의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또 다른 말로는 ‘최상의 행복, 궁극의 행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상윳따 니까야의 ‘열반경’(S38:1)에서 한 유행승이 “‘열반, 열반’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탐진치의 멸진이 열반”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열반이란 업과 윤회, 괴로움을 만드는 탐진치의 소멸, 갈애와 갈망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그래서 열반은 유위법이 아니고 조건 되어지지않은 무위법에 속하며, 세간적인 마음이 아니고 출세간 도과의 청정한 마음이다.  

그럼 열반을 증득하면 어떤 이익과 결실이 있는가? 일단 범부 수행자가 성자의 단계로 도약한다. 범부 종성이 성자 종성으로 바뀌는 단계가 열반 체험에서 오기 때문이다. 아라한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열반은 여러 차례 일어날 수 있고, 그때마다 근본 족쇄 번뇌들은 단계별로 뿌리 뽑힌다. 그래서 사악처의 문은 영원히 닫히며, 다시 범부로 떨어질 염려가 없는 확고부동한 상태가 보장된다. 이러한 관점이 초기불교에서 설명하는 열반이자 수행의 증득 과정이다.

그저 인지적으로 한 생각 바뀐다고 열반을 증득하거나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걸어갔던 중도이자 8정도 수행, 계정혜 삼학의 길을 닦을 때, 수행자는 열반을 기약할 수 있다. 만약에 열반과 해탈,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가 왜 수행해야 하며 그 누가 수행하겠는가? 열반의 증득과 실현은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의 목표이고 목적이다. 우리의 스승, 붓다가 후학들에게 남겨준 가장 간결명료한 수행의 메시지가 바로 열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대념처경’에서 멸성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다.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은 다 열반을 설명하는 동의어이다. 열반을 설명하는 또 다른 말은 ‘업의 축적이 없음, 재생연결이 없음, 생로병사가 없음, 죽지 않음(불사), 슬픔과 비탄, 절망 없음, 오염되지 않음’ 등으로 ‘대념처경’ 주석서는 설명을 한다.

그럼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이런 열반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1차로 괴로움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철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괴로움의 원인이 갈망과 집착, 무명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챙김 알아차림 수행을 해야 한다. 이런 수행을 통해 새로운 업은 만들지 않고, 묵은 업은 소거되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장작불을 활활 때주면, 가마솥에 가득했던 물이 점차로 증발하여 다 사라질 때가 온다. 마찬가지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지혜와 통찰력의 불을 계속 때주고 있을 때, 무명과 갈애의 물도 다 증발할 때가 오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밝고 바르게 깨어있음이다. 마음챙기고 알아차려야 한다. 최상의 행복이라고 하는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 지름길은 바로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사띠빳타나(염처) 수행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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