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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혜(쩨링돌마·59) 염불수행 - 상

기자명 법보

직장 스트레스에 기도 시작
정성 다하면 된다는 생각에
경전 그저 따라하기에 바빠
업장소멸 꿈꾸고 의식 갖춰

오늘도 새벽 3시에 알람이 울렸다. 따뜻한 잠자리에 미련이 남았지만 떨치고 일어났다. 조금 더 미적거리면 기도하기 좋은 시간이 아깝게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좀 늦장을 부려 늦은 시간에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데, 시간에 따라 기도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인도의 어떤 구루는 새벽 3~4시경을 천신이 내려오는 시간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실제 그 시간에 기도를 해보면 고요함의 깊이가 다른 듯하다. 

내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이다. 그 이전에도 아침에 출근 전 간략하게 기도를 드리기는 했었으나 불교는 아니었다. 직장에서 업무와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출근 전에 ‘오늘 일이 잘 풀리게 도와주십시오’하는 매달림으로부터 시작됐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 직장에서 힘들어하거나 일찍 세상을 뜨는 동료가 있을 때 산 사람은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돌아가신 분들은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며 기도했다. 기도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살이 붙었고 은연중에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도 더욱 자라났다. 

언젠가 높은 건물 위 옥상 또는 산 정상 같은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명상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희망인지, 미래의 모습인지 알지 못할 이미지는 계속 마음에 남았고, 그 느낌을 따라오다 보니 대학원에서 명상,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접근한 명상은 자연스레 불교 수행으로 연결됐다. 광우 스님과 문광 스님의 유튜브 방송이 큰 도움이 되었다. 광우 스님은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귀에 쏙쏙 들어오게 불교를 알려주셨다. 문광 스님은 사경, 독경, 염불, 절, 간화선 등 다양한 수행을 108일씩 돌아가며 해보다가(연공수행) 잘 맞는 수행을 찾으면 그걸 계속 수행하면 된다고 했다. 문광 스님의 ‘연공수행’ 강의를 보고 그날 바로 108일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는 ‘반야심경’ ‘광명진언’ 등의 기도를 되는 대로 했고, 나의 정성이 지극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기도를 시작한 날 저녁, ‘반야심경’을 외우지도 못했는데 자는 동안 몇 구절이 계속 귀에서 맴돌며 환희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행에 입문하며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반야심경’ ‘광명진언’ ‘천수경’을 틀어놓고 그저 따라하기만 했다. 불자들이 하는 기도는 아니었지만, 양손은 칼같이 합장한 채 어디서 숨을 쉬는지, 운율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복사기처럼 따라하며 열심히 했다.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에 혼자서 너무 뿌듯했던지 꿈에서는 몇 번 이상한 존재들과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기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꿈속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남편의 몸에 손을 대고 있었다. 아이는 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보였다. 그 아이가 나쁜 존재라고 생각한 나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그 당시는 잘 외우지도 못하던 ‘반야심경’ 구절을 외우며 그 아이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그 아이의 살갗이 마치 진흙이 마르며 갈라지듯이 껍질이 일어나며 분해되어 버렸다. 또 어떤 꿈에서는 메두사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청동의 존재가 눈동자 없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해가 떠오르듯 부상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또 뭐라고 중얼거리며 그 청동의 눈과 눈싸움을 벌였다. 나의 기운에 밀려 그 청동의 상은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어설픈 기도가 자리를 잡게 된 것도 꿈을 통해서였다. 꿈속에서 나는 어떤 집의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작은 대야에 빨랫감을 넣고 주무르니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때가 빠질 리가 없었다. 잠을 깨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빨래는 업장소멸하는 꿈인데 이렇게 빨래가 안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의문을 품고 스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삼배, 발원문, 지장염불, ‘지장경’ 독경 등으로 형식을 갖추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불교식 기도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 지장염불 천일기도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대학원에서 알게 된 스님들께 물어 ‘천수경’을 추가하고, 자기 전에는 능엄주를 읽기 시작했다. 요즘은 직장에서 능엄주를 읽는데, 읽고나면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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