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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마조계 선의 축생 이야기-보살사상

기자명 정운 스님

입전수수, 선의 대표적 보살행

남전‧조주 등이 던진 공안에
너구리‧소 등 축생 자주 등장
분별심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
중생구제 위한 대비심도 담겨

근자 조계종에서 ‘성불하십시오’가 아닌 ‘전법합시다’로 바꿔야 한다고 할 정도로 대중 포교에 관심이 고조되어 있다. 필자가 출가했을 무렵, 불교는 선이 중심이었다. 승려는 오롯이 선방에서 올곧게 사는 모습이 ‘중 답다’고 하였고, 강원이나 동국대 수업에서도 선 위주의 수업이 많았다[선학과]. 

그런데 불교에 이타(利他)가 없어서 승려들이 오롯이 자신의 깨달음만을 추구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조계종도 대승불교에 해당하며, 당연히 선자들의 중생 제도가 있다. 그 대표적인 이타에는 남송 시대 등장한 십우도의 마지막 그림인 입전수수 사상이다. 아홉 번째 그림이 깨달음의 최고 경지[返本還源]이고, 그다음 열 번째가 입전수수(入纏垂手)이다. 즉 깨달음에 이른 다음, 중생에게 돌아가 중생을 제도하는 그림이 입전수수이다. 이 원고에서는 마조계 문하에서 축생과 함께한다는 이타 사상을 보자.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현재‧미래,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르는 것을 무지한 짐승[너구리와 늙은 암소]은 알고 있다.” 

부처님은 모르는데, 축생이 알고 있다는 것은 파격적인 말이다. 하지만 불법의 진실을 말한다면, 성스러운 부처님이든 너구리‧암소이든 간에 모두 평등해서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공안이나 화두가 일반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타파한다. 여기서도 지나친 파격이지만, 그 어떤 프레임(frame)에 갇혀 분별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동물을 활용해 분별심 타파를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축생을 포함한 모든 중생에 불성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는 평등사상이 담겨 있다. 남전의 이류중행(異類中行) 공안이 있다. 이류(異類)란 인간과는 다른 생물, 즉 축생을 말한다. 이 공안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들어가서 수행할 때도 그 본분사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전이 열반에 들 무렵, 한 제자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절대로 왕노사(王老師)의 머리 위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남전이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왕노사가 어디로 갔는가?’라고 물으면, 그에게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근본으로 돌아갔다고 하겠습니다.”/ “벌써 내 머리 위를 더럽혔느니라.”/ “그러면 화상께서 돌아가신 뒤에 어디로 가십니까?”/ “산 밑 단월의 집에 가서 한 마리의 수고우(水牯牛)가 될 것이다.”/ “제가 화상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네가 나를 따라온다면, 풀을 한 줄기 물고 와야 한다.”

위의 왕노사란 남전을 가리킨다. 남전의 속성이 왕(王) 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전은 죽고 난 뒤에 ‘소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하고 있다. 설사 이류(異類) 속에 떨어져, 뿔을 달고 가죽을 둘러쓰고 있는 짐승의 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본분사’를 잊지 않고, 활발하게 전개한다는 뜻이다. 남전은 이번 생에 중생들의 보시로 공부했으니, 입적(入寂)의 고요함에 안주하지 않고 축생으로 태어나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마경’에서 언급하는 무주열반(無住涅槃) 사상이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은 뒤에 홀로 열반 세계에 머물지 않고, 다시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로 온다는 뜻이다. 남전의 이류중행 공안은 보살행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마조 문하의 제자 가운데 보살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남전에게서 조사선이 추구하는 이상이 대비(大悲)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보살사상을 하나 더 보자. 남전의 제자 조주(趙州, 778~897)가 머물던 도량을 찾아가는 길에 석교가 하나 있다. 한 학인이 조주를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조주의 돌다리 소문을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외나무다리뿐이네요.”/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는 보질 못했군.”

학인이 ‘돌다리가 어떤 것입니까?’고 물었다. “나귀도 타고 말도 건너지.” 곧 조주석교란 어떤 중생[축생 포함]이 찾아오든 그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제도해 준다는 대승사상이다. 이 이야기는 ‘조주석교(趙州石橋)’라는 공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19호 / 2024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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