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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도인’이 시로 드러낸 선의 경지

  • 불서
  • 입력 2024.03.04 18:28
  • 호수 1719
  • 댓글 0

경봉시집
정석 지음‧최두헌 옮김/지만지한국문학/2만8800원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이 나타나네/ 하하 웃으며 만나 의혹이 없으니/ 우담발라 빛이 세상에 흐르는구나.” (경봉, 화엄산림 6일째 1923년 12월 13일)

경봉정석(1892~1982) 스님은 ‘통도사 군자’ ‘영축산 도인’으로 불릴 만큼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다. 16세에 통도사에서 성해남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강원에서 교학을 익혔으며, ‘양로염불만일회(養老念佛萬日會)’를 결성해 염불 대중화에 이끌었다. 마산포교당을 비롯해 경남 일대 포교당 주지를 맡아 대중 포교에 나서는 등 통도사와 한국불교 발전에 공헌했다. 

20대에 본격적인 구도 행각에 나서 천성산 내원사 혜월 스님을 시작으로 수많은 선지식들을 친견하며 법을 구했고, 용성 스님으로부터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해 받았다. 36세 되던 해인 1927년 12월 통도사에서 열린 화엄산림 기간 중 큰 깨달음을 얻어 통도사 극락암에 선원을 개설했다. 이후 조실로 추대돼 후학들을 제접했다. 1982년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홀연히 입적했다. 

경봉 스님은 뛰어난 선승이면서도 다른 선승들과 달리 글을 가까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스님은 입적하기 몇 해 전까지 60여 년간 거의 매일 같이 일기를 써왔다. 통도사 극락암에서 발견된 스님의 ‘일지(日誌)’에는 사소한 일상이나 자연에서 느끼는 감성, 주변 인물들과의 교유, 사상을 짐작할 수 있는 문학 작품, 당시 통도사의 모습과 종단의 현안, 나라의 크고 작은 일, 선승들과의 법거량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 자체로 당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사료로도 손색이 없다. 뿐만 아니라 수행 과정에서 체험했던 선의 경지와 평상심을 표현한 한시(漢詩) 300여 점이 담겨 있다. 스님의 선적 깨달음의 근원은 물론, 깊은 한문학적 소양을 가늠할 수 있다. 
 

책은 ‘경봉 정석의 한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보탁 최두헌 선생이 경봉 스님의 ‘일지’에 수록된 한시 300여 점을 우리말로 풀어놓은 것이다. 경봉 스님은 1914(23세)년 6월 7일 은사의 회갑을 축하하며 지은 ‘성해선사 수연시’로 시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딘 후 1920(29세)년 ‘소금강 내원사 시선’을 통해 본격적인 시인의 면모를 보였다. 이후 스님은 시를 통해 화엄과 선의 종지를 드러냈고, 수행에 대한 확신과 깨달음에 대한 희열을 경책시(警策詩)를 통해 후학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옮긴이는 “경봉 스님에게 있어 시는 수행과 포교만큼 중요한 일상이었고, 삶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시를 통한 점검과 경책은 근대 한국불교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풍은 스님 삶의 후반기에 많은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대로 발현되기도 하는데, 화답시나 차운시 등은 스님의 삶이 얼마나 시적(詩的)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권오영 전문위원 oyemc@beopbo.com

[1719호 / 2024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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