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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앞세우다 본말전도…'스님만 교수' 제도 바꿔야”

  • 교학
  • 입력 2024.03.08 22:03
  • 수정 2024.03.11 09:23
  • 호수 1720
  • 댓글 14

동국대 선학 와해되나-하

선학과 명상 도입해 학생 유치
전통선 전공자·강좌 외면 가속
선학 근간·정체성까지 무너져
“역량 있다면 출재가 떠나 채용”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정각원 전경. [동국대 홈페이지]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정각원 전경. [동국대 홈페이지]

선종 종립대학인 동국대서 전통 선학이 단절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이를 되살리기 위해선 선어록 등 문헌에 밝은 학자들이 연구·강의할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스님으로 제한한 선학과 교수 자격 제한을 풀어 역량을 갖춘 학자들을 채용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동국대에서 전통 선학의 쇠퇴는 예견된 일이었다. 복수의 선학과 관계자에 따르면 학생 유치는 오랫동안 절실한 당면과제였다. ‘선’을 전공하려는 이들이 갈수록 줄었기 때문이다. 불교대학 내에 40명 정원의 불교학과와 20명 정원의 인도철학과는 정원을 거뜬히 채우는 반면 선학과는 10여 명 안팎에 그쳤다. 2010년 불교학부 체제로 변경되면서 한 학부에 개설할 수 있는 전공과목이 정해지자 자연스레 선학 강좌의 비율이 줄고 수강 인원도 더욱 감소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선학 강좌의 무게 중심은 학생들의 선호와 취업에 유리한 응용선으로 옮겨갔다. 때마침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불교 수행법을 활용한 명상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그 효과가 학문적으로 입증되면서 대중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선학과에서 선과 불교적인 명상법을 병행하려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선학과 A교수는 “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담을 접목한 응용선 과목을 통해 상담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게돼 선호도가 높아졌다”며 “선과 명상·상담 등의 연결이 새로운 선학의 비전이자 학생을 유치하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선학과의 새로운 변화를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취업을 앞세우다 보니 선학의 근간과 정체성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존의 선어록과 선사상, 선종사 등 전통선에 중심을 두되 응용선 및 명상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동국대 선학과 강사를 지낸 B스님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어떤 분은 선종의 초조 달마에서 6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여섯 분의 선사 이름을 알지 못한 것은 물론 조계종 도의국사조차 몰랐다”며 “이런 분이 어떻게 선학과 박사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동국대에서 종학의 전통을 되살리려면 전통선 연구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여기에 매진할 수 있는 인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견해들이 많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를 지낸 성본 스님은 “선은 사람들이 불안, 근심, 초조, 두려움, 공포 등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시한 것인데 이를 외면한 채 응용만 강조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응용선에 앞서 기본적으로 전통선이 먼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선사상, 선역사, 선수행체계를 교육할 수 있는 인재가 있다면 선학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선의 새로운 가치도 창출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선학과 명예교수 C스님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한문 등 고전으로 된 어록을 읽고 강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학자에게 선학 강좌를 맡길 것을 제언했다. 현행 선학과 학사 운영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C스님은 “전등록이나 선사어록, 중국선종사, 한국선종사 등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로 선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특히 대학원에서는 전통선의 전문적인 강좌를 통해 연구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응용선도 전통선의 기반 아래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국대 선학과 명예교수 D스님은 재가자라도 능력이 있으면 교수로 채용해 선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문을 열 것을 강조했다. 실제 선학과는 그동안 스님을 교수로 임용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교수 채용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재가학자가 선학과나 외부 대학에서 선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더라도 선학과 교수로 임용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이다. B스님은 “선수행의 중심은 승가에 두더라도 학문적 세계에서는 승속을 떠나 유능한 학자를 교수와 강사로 채용해야 한다”며 “그럴 때 전통선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학을 전공하려는 대학원생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선학회장을 역임한 김방룡 충남대 철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요구나 사회적 변화에 맞춰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학의 근간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며 “동국대는 선학을 전공한 재가학자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학을 전공한 E박사도 “선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에 의해 입증된 수행법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다”며 “고정된 틀을 깨뜨리는 인재 활용에서 동국대 선학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yur1@beopbo.com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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