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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여 불자, 온 밤 밝히는 "금강반야바라밀"로 오대산 장엄하다

  • 수행
  • 입력 2024.03.11 20:42
  • 수정 2024.03.13 08:30
  • 호수 1721
  • 댓글 10

평창 월정사, 3월 9~10일 '금강경 봉찬 철야정진’
생방송 4500명 시청 등 새벽 3시까지 독경 이어져
정념 스님 "세상 부처님처럼 보는 지혜 터득하길"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가고, 산사는 조용히 그림자를 입기 시작했다. 하늘에 장막이 짙어질 무렵, 적막을 깨고 대웅전에서 ‘금강경’ 독경 소리 쏟아져 나와 별빛과 어우러져 온 산을 환히 장엄했다.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둠을 몰아내듯 쉴새 없이 울리는 목탁과 북소리에 맞춰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새벽 1시가 지나자 때늦은 폭설에 만개한 눈꽃 사이로 매서운 추위가 불어닥쳤지만, 일체 번뇌를 내려놓고 본래면목을 찾겠다는 불자들의 간절한 염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금강경’을 읽기 전에는 제 마음에 화가 많았어요. 남편과 자식, 이웃들과 성격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죠. 그런데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부처님 가르침처럼 나와 남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어요. 지금은 도반들과 노보살님들을 모시고 매달 독경 정진하러 찾아오고 있어요. 인솔 인원이 많다 보니 소통 문제로 지칠 때가 많은데, 함께 하나의 마음으로 정진을 마치고 나면 환희심이 절로 납니다.”(천소이 불자·59)

독경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멈췄다. 그러나 한 사람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을 위한 축원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집착 없는 보시를 강조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듯, 끊임없이 ‘금강경’을 외며 서로를 축원하는 불자들의 거룩한 신심이 한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오대산 자락에 번져나갔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는 전국에서 찾아온 불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금강경 봉찬기도 철야정진’에 참여하는 재가 수행자들이다. 지난해 3월 오대산 불교 중흥과 한암중원(漢巖重遠, 1876~1951) 스님의 유훈을 기리고자 시작한 금강경 독경 정진은 1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처음 700명이었던 동참자는 현재 신청 8000가구, 참여 인원은 온·오프라인 평균 7000명에 달한다. 1주년을 맞은 3월 9일 정진도 전국에서 1700명, 유튜브 생방송 4500명이 시청하는 등 뜨거운 호응 속에 성사됐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불자들에게 1년 동안 독경하며 무엇을 얻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불자들에게 1년 동안 독경하며 무엇을 얻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주지 정념 스님은 불자들에게 1년 동안 독경하며 무엇을 얻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잠시 답변을 듣던 스님은 “내것 네것 구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재 모습이 서로 함께하는 인연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알아차리는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오늘을 마지막이라 여기지 말고, 분별과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번뇌를 모두 잊고 세상을 부처님처럼 바라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이어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조선을 수호한 사명대사는 전쟁이 끝난 후 통신사로 직접 일본에 건너가 교류의 길을 열어냈다”며 “민족을 해친 일본을 용서하고 양국 간 200년 평화를 이끈 사명대사에게는 무아의 법에 통달한 ‘금강반야바라밀’ 정신이 있었다. 마음의 문을 열면 복덕이 그대로 들어옴을 알고 육바라밀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주지 정념 스님의 특별법문과 월정사 수행원장 자현 스님의 ‘금강경’ 강의는 용맹정진으로 이어졌다. 월정사 출가학교 문수선원과 적광전에 빼곡히 들어앉아 ‘금강경’ 32품을 반복해 외웠다. 1독할 때마다 정성스레 절을 올리는 불자부터 쉼없이 부처님을 부르는 불자까지. 사부대중은 그 자체로 신심이었다.

박민선(묘련화·57) 불자는 “방송을 보고 관심을 가지던 중 지인의 소개로 참여하게 됐는데, 1년 동안 매일같이 독송하고 사경하며 즐겁고 행복했다”며 “가족과 이웃들도 나를 보며 분위기가 환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모두가 ‘금강경’을 수지 독송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수보리에게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며 “‘집착 없이 마음을 내라’ 가르친 부처님처럼 형색에 집착 없는 마음으로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봉사자 해공 불자는 “매달 많은 불자가 경전을 소중히 품고 소풍처럼 찾아와 즐겁게 정진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며 “봉사하러 왔지만, 언젠간 같이 정진하고 싶다. 그에 앞서 늘어가는 참여자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월정사를 위해 앞으로도 매달 봉사하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월정사 수행원장 자현 스님.
월정사 수행원장 자현 스님.

오대산 중턱에 위치한 월정사는 도시에서 접근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활용한 포교에 진력해 왔다. 그렇기에 매달 1500여 불자가 직접 찾아와 펼치는 용맹정진은 21세기 포교의 성공 사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월정사뿐 아니라 전국 많은 사찰에서도 온라인으로 함께 진행하고 있는 ‘금강경 독경 정진’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월정사 수행원장 자현 스님은 성공 요인으로 ‘사경집 배포 및 소지 법회’와 ‘전용 기도앱 출시’를 꼽았다. 월정사는 기도에 참여한 불자들에게 직접 제작한 사경집을 나누어줬다. 불자들은 네이버 밴드를 통해 자신의 사경 진도를 공유하는 등 서로의 정진을 탁마하고 격려했다. 또 전용 기도앱 ‘월정사 금강경’을 출시해 금강경을 1회 이상 들으면 연꽃 도장이 찍히며 출석이 인정되도록 했다. 이는 수행 독려와 신심을 증장시키는 효과를 이끌었고, 지난해 10월 봉행한 ‘금강경 사경소지 대법회’에는 4000명이 넘는 불자가 참석했다. 

자현 스님은 “단순히 ‘금강경’을 읽는 것과 직접 손으로 새기며 외우는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며 “또 사경집 맨 앞표지에 각자 발원하는 대상의 사진을 강력 테이프로 붙이게 함으로써 온 마음을 담아 정진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자 소중히 다뤄온 사경집을 아무 곳에서 태울 수 없기에 불자들은 처음 발심한 월정사로 다시 모이게 된다”며 “올해는 10만 권을 배포할 계획이다. 월정사 ‘금강경 봉찬기도’가 새로운 발심의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월정사는 말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과 연계, ‘금강경 봉찬기도·철야정진’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해 전국적인 포교와 기도·명상수행에 혁명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스님은 “‘금강경 독경’에 참여한 불자들이 각자의 재적사찰로 돌아가 지역 사찰에서 다시 정진의 꽃을 피우길 기대한다”며 “월정사의 성공을 선례로 삼아 각 사찰에서도 ‘금강경’ 독경 정진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한국불교 중흥을 앞당겨주길 서원한다”고 말했다.

본격 정진에 앞서 1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가 열렸다.
본격 정진에 앞서 1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가 열렸다.

월정사는 향후 ‘금강경’ 독송 공덕을 강조해 선불교의 우수성을 진작하고, ‘금강경’이 예수재와 탑다라니를 통한 명정으로 사용되는 부분을 조명해 ‘삶과 사후를 관통하는 기도’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동시에 중대 사자암, 상원사, 북대 미륵암을 거치는 오대산 성지순례코스도 활성화한다. 올해 4월 13일에는 ‘제2회 금강경 사경 소지 대법회’를 봉행해 불자들의 신심을 새롭게 다진다.

평창=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이하 월정사 '금강경 봉찬 철야정진’ 현장 사진.

불자들은 법당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금강경’ 독경에 매진했다.
불자들은 법당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금강경’ 독경에 매진했다.
월정사는 금강경 봉찬·철야정진을 맞아 한 달만에 사찰을 다시 찾은 불자들을 위해 고려시대 석탑에서 나온 사리를 특별 공개했다. 
월정사는 금강경 봉찬·철야정진을 맞아 한 달만에 사찰을 다시 찾은 불자들을 위해 고려시대 석탑에서 나온 사리를 특별 공개했다. 

 [1721호 / 2024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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