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치욕의 순간을 기억하라

한국 침략 흑막 숨기고자
한일불교 교류 앞세웠지만
실상 한국불교, 무시 대상
치욕적인 역사 늘 기억해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역사학자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의 말로 알려지면서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관계는 불분명하다. 이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 신채호 선생의 말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이다. 

지난 3월 1일은 105주년 삼일절이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3·1절 홍보 포스터를 제작해 공식 SNS 계정에 올리며 ‘1919년 3월 1일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 한국, 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근데, 이 설명은 뭔가 이상해 보인다. 3·1운동이 만주 하얼빈? 역사적으로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지 않았나!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서 1919년 4월 11일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되지 않았나! 장소, 시간 뭐 하나 맞는 것이 없다.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행안부는 “오류를 확인했다”며 해당 홍보물을 삭제했다. 이미 명확히 정리해 놓은 역사적 사실들이 있는데, 왜 자꾸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제강점기는 한국불교사에서도 가장 엄혹한 시기였다. 일제는 1876년 한국 침략의 흑막을 숨기기 위해 한일불교의 교류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일병합조약 이후인 1910년 사찰령(寺刹令)을 발표함으로써 친일불교화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사실, 말이 ‘친일화’이지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불교는 배척과 무시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어떤 무리들이 사찰 대웅전 앞에서 술판을 벌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진 왼쪽에 군화와 같은 가죽 신발이 있고, 중앙에는 일본 순사들이 차고 다녔던 검 두 자루가 좌우로 보인다. 추측건대, 일본 순사들이 절에 와서 술판을 벌이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절에서 술이라니, 굳이 불음주(不飮酒)를 논하지 않더라도,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 앞에서 버젓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당시 일제가 한국불교를 어떻게 여겼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통사(韓國痛史)’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를 쓴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은 “국사(國史)가 망하지 않으면 국혼(國魂)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사를 잊지 말라고 강조했던 신채호 선생의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말이 거듭 떠오른 것은 사진 속 일본 순사들 뒤에 앉아 있는 스님 때문이다. 비록 초라한 듯 쪼그려 앉아 있지만, 결기를 품은 얼굴에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손에 염주를 꼭 쥐고 있는 스님. 마치 이 치욕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후대에 이야기하는 듯하다. 사진 속 스님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불교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황정일 동국대 대우교수 9651975@hanmail.net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