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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사성제 관찰 위빠사나명상 - 4

기자명 일중 스님

괴로움 소멸로 인도하는 팔정도

열반 위해 닦아야 할 진리
깨달음 위한 덕목들 구비
계·정·혜로 재분류 가능
계에 기반한 완전한 수행

사성제 관찰에서 네 번째는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이다. 즉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런 진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열반이라는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서 수행자가 닦아야만 하는 실천방법(道)이라는 성스러운 진리인데, 그 진리가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는 초기불교 수행의 대명사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수행자에게 팔정도는 중요하다. 팔정도에 초기불교 수행체계인 계·정·혜 삼학이 들어있어 계를 기반으로 한 마음집중과 마음챙김 수행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혜와 통찰력, 열반과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의 여정에서 팔정도는 모든 덕목을 구비하고 있는 완전체라고나 할까?

상윳따 니까야의 ‘바라문경’(S45:4)에서는 팔정도를 ‘신령스러운 마차이자 법의 마차’라고 비유했고, ‘항아리경’(S45:27)에서는 ‘마음이 엎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마음의 버팀목’이라고 했다. ‘바다경’(S45:114)에서는 ‘팔정도를 많이 닦으면 그는 열반으로 흐르고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배경’(S45:158)에서는 ‘팔정도를 많이 닦으면, 열 가지 족쇄(번뇌)는 쉽게 푸석푸석해지고 썩어버린다’고 했다. 그만큼 팔정도는 인간 붓다가 가르친 수행 분야에서 중요한 핵심 요소가 된다. ‘초전법륜경’에서는 팔정도를 중도(中道)라고 천명한 바 있다. 중도는 성스러운 길, 성도(聖道)라고 했으며, 성도는 해탈도(解脫道), 열반도(涅槃道), 청정도(淸淨道)이기도 하다. 그러니 팔정도를 강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 ‘대념처경’에서 도성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그렇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으로 재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다.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계는 계(戒)에 속하고,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는 정(定)에 해당하며,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는 지혜(慧)에 해당된다. 지혜에 해당하는 정견과 정사유가 먼저 등장하는 것은 지혜가 선행되어야만 바른 수행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 바른 이해이다. 무엇이 정견인가? ‘대념처경’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에 대한 지혜’, 즉 사성제의 지혜를 바른 견해라고 분명하게 정의했다.
 
정견은 삿된 견해(邪見)의 반대이다. 전도견이나 편견, 상견이나 단견 등 진리에 배치되는 잘못된 믿음이나 신념, 주장이나 견해가 아니다. 사실과 진실, 진리에 부합하는 실상에 대한 바른 이해, 지혜가 정견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세상의 모든 유위법은 다 원인과 결과, 원인과 조건법을 따른다는 연기에 대한 이해, 탐욕과 갈애, 생사윤회는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라는 분명한 앎, 팔정도 수행을 통해서 열반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 등을 바른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이다. 자타를 해롭게 하지 않고 자타에게 이익이 되는 이타적인 생각이 바른 생각이다. ‘대념처경’은 ‘출리에 대한 생각, 악의 없음에 대한 생각, 잔인하지 않음에 대한 생각’을 바른 사유라고 정의한다.

바른 말과 바른 행위, 바른 생계는 바르고 건강한 방식의 삶을 살라는 계의 내용이다. 바른 마음챙김(正念)은 몸과 느낌, 마음과 법이란 네 가지 대상에 바르게 마음챙김 수행을 하여 통찰 지혜를 얻게 하는 수행이다. 바른 삼매(正定)는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색계 4선정을 성취하는 것이 바른 삼매라고 했다. 이처럼 초기불교, 남방불교의 수행 전통에서 팔정도는 계를 기반한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의 차제 구조로 되어있어, 팔정도 수행을 빼고 다른 수행을 생각할 수 없다. 21세기를 사는 수행자들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팔정도 수행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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