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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타자의 주검[尸骸]에 의한 논증

타인의 몸이란 바로 내 몸의 감춰져 있는 뒷면

타인 몸의 감각 기능은 오직 타인의 마음에만 알려져
내 마음은 타인의 몸을 바깥 세계의 일부로서 인식해
내 몸도 세계 속에 드러나면 타인의 몸이고 바깥 경계

세상의 모든 학설은 마치 달이나 동전의 양면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간혹 그 뒷면에는 예상치 못한 그림이 그려져 있을 수 있다. [아이클릭아트]
세상의 모든 학설은 마치 달이나 동전의 양면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간혹 그 뒷면에는 예상치 못한 그림이 그려져 있을 수 있다. [아이클릭아트]

나는 올 초부터 가짜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해 오면서, 되도록 내 생각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지난 글에선 나의 마음과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하는 나의 몸에 대해 사색하였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타자의 몸[他身]’이라는 주제로 옮겨오게 되었다. 나는 이번 주제의 독특함에 흥미를 느끼지만, 많은 사람이 그 내용에 흔쾌히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긴 해도 그것 또한 미륵의 후예들만의 기이한 학문적 열정으로 도달한 결론이니, 그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저 미륵의 후예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생각과 말을 약간 각색해서 전달하고 있다. 만약 내가 어디쯤에서 몸에 관해 말하길 멈춰야 한다면, 아마도 타인의 몸이 될 것이다. 미륵의 후예들이 그랬듯이, 나도 그 이야기로 몸에 대한 사색을 마무리하려 한다.

지난번 글에서 나는 나의 마음과 몸의 불가지한 우정을 말하게 된 것에 내심 흐뭇해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난처한 상황을 뚫고 나갈 촌철살인의 경구 하나를 찾으려 애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학설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간혹 그 뒷면에는 예상치 못한 그림이 그려져 있을 수 있다. ‘몸’에 대한 학설도 마찬가지다. 나는 6세기쯤 활동했던 서방(인도)의 두 논사의 논쟁 속에서 그 학설의 비밀스런 뒷면을 본 적이 있다. 겉으로 볼 땐 둘이 ‘타자의 몸’에 대해 논쟁하는 것 같지만, 이 글이 끝날 때쯤 그것이 결국 ‘나의 몸’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십여 년 전 ‘성유식론’이라는 책을 읽다가 그 논쟁을 처음 알게 되었고, 최근에 ‘유가론기’라는 방대한 주석서의 한 곳에 숨겨져 있던 그 논쟁의 흔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논쟁은 논증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볼 때마다 내게 기이한 인상을 남겼다. 그 논쟁의 논리라면 두 편의 논문에서 이미 다루었으니, 이번엔 내가 느꼈던 그 이상한 여운의 정체를 캐보고자 한다.

‘성유식론’이라는 책에서는 저 ‘감각 기능을 가진 몸[有根身]’에 관한 해석을 마무리하면서 ‘업력으로 주어진 몸’의 마지막 비밀스런 의미를 슬쩍 보여준다. 우리의 일상적 언어와 닮지 않은 그들만의 언어가 처음엔 암호 같겠지만 오리무중 속에서 무엇을 조금 알아차리게 된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각색을 거치기 전에 먼저 그 본문을 그대로 옮겨보려 한다. 그 책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두 논사의 논쟁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의 마음은 타인의 몸을 변현해내는가.’ 이에 대해 첫 번째 논사가 이렇게 주장한다. ①‘나의 마음은 또한 타인 몸의 오근(五根: 다섯 종류 정묘한 감각 기능)도 변현해낸다.’ 그 주장의 문헌적 전거로 어떤 논서가 인용된다. 그러자 두 번째 논사가 이렇게 반박한다. ②‘나의 마음은 단지 타인의 오근의 의지처[依處: 감각 기관을 이루는 물질, 즉 눈·귀·코·혀 및 나머지 신체 부위]만을 변현해낸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례로 타자의 주검이 제시된다.(‘성유식론’ 제2권) 이 논쟁을 전하는 후대 중국의 학승들은 후자의 해석을 정설로 받아들였고, 그 후자가 바로 당대(唐代) 미륵의 후예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호법(護法) 논사다.(‘성유식론술기’ 제3권)

이하에서 저 암호문 같은 두 논사의 대화를 조금 쉽게 풀이해 보겠다. 이들이 무슨 문제로 서로 논쟁하는지 이해하려면 몇 겹의 문을 열어젖혀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잠시 지난번 글의 취지를 환기해 보자. 유식(唯識)의 관점에서는, 육도에서 윤회하는 중생들은 한 부류의 마음(제8아뢰야식)을 총체적 과보로 받고, 그 마음에 의해 각자의 몸과 세계가 현현한다. 세상의 산간 오지를 홀로 떠도는 나그네이든 혹은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직장인이든, 그의 마음이 평생 꾸게 될 꿈의 형식은 동일하다. 그의 마음엔 언제나 그의 몸이 나타나고, 그와 동시에 그 몸을 에워싸는 외적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그의 감각 기능을 가진 몸을 살아있는 실체처럼 감지하는 반면, 몸 바깥의 사물들은 외부에 있는 객체처럼 인식한다. 그러니까 몸과 세계는 모두 마음 안에 나타나 있지만, 다시 그의 마음은 그의 몸을 기점으로 해서 안팎의 차이를 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 현현되는 저 바깥 풍경 속에는 도심 번화가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군중들의 모습, 혹은 좁은 방 안에서 떠드는 동료들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미륵의 후예들도 그런 풍경을 보았을 것이고,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던져야 할 질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나의 마음(제8아뢰야식)은 과연 저들의 몸을 알아차리는 것일까(변현해내는가).’ 누구나 알 것 같은 뻔한 질문에는 뻔하지 않은 최후의 대답이 기다리고 있고, 그에 앞서 희생양이 되어 주는 첫 번째 주자가 등장한다. ①‘나의 마음은 나의 몸뿐만 아니라 또한 타인 몸의 감각 기능까지 모두 알아차린다.’ 이것을 반박하면서 호법은 다음과 같은 비밀스런 의미를 알려준다. ②‘만약 나의 마음이 타인의 감각 기능을 가진 몸을 변현해 낸다고 할 것 같으면, 이는 마치 나의 마음이 타인의 몸에서 한집살이하면서 그의 감각 기능으로 보고 듣고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나의 마음은 단지 타인의 눈·코·입·귀 및 나머지 신체 부위와 같은 가시적 측면만 인식하는 것이고, 마치 바깥 세계[外器世間]의 일부처럼 인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완전한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의 식(識)엔 그의 몸이 더 이상 현현하지 않지만, 나의 식에는 여전히 그의 남겨진 주검[彼餘尸骸]이 현현한다. 이는 나의 마음이 타인의 몸을 바깥 세계의 일부로 변현해 내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제 나의 소감을 말해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법의 말이 끝난 뒤에도 내 귓전에 울리는 어렴풋한 울림의 정체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내 생각엔, 그는 타인의 몸에 대해 말하면서 실은 나의 몸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타인의 몸이란 바로 나의 몸의 감춰진 뒷면이다. 나의 마음이 나의 몸을 살아있는 실체로 붙잡고 있을 때, 타자의 마음은 나의 몸을 바깥 세계의 일부로 인식한다. 그러니까 우리 각자의 몸은 세계 속에 드러나는 순간 타인의 몸으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호법의 말이 내게 일종의 위안을 준 것처럼 여겨진다. 돌아보면, 나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홀로 내 안의 어떤 힘이 나의 몸을 추동해 가는지를 들여다보려 했는데,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들은 세계 속에 산천초목 등과 함께 나란히 드러난 나의 외관을 볼 뿐, 나의 내면의 색채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타인들의 비난과 칭찬에 초연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으리라.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722호 / 2024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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