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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①

기자명 법보신문

한국인의 수행-신앙 길라잡이

『천수경』의 경우, 이미 적지 않은 해설서들이 나와 있다. 나 역시 1991년 1년 동안 법보신문을 통하여 해설을 연재한 바 있으며, 이를 『천수경이야기』(민족사, 1992)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바 있다. 13년 전의 일이다. 그런 뒤에도 나는 『천수경』에 붙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 도대체 『천수경』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일까?

나는 학자로서 대학에 몸담고 있다. 전공영역이라는 기준으로 한 사람의 학자를 평가할 때, 『천수경』을 공부한다는 것(물론, 『천수경』만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지만)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어떤 전공영역 안에도 소속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수경』의 핵심이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다라니에 있으며 대장경 속에는 그 다라니를 설하는 것이 중심이 된 『천수경』이 존재(이를 나는 ‘원본 『천수경』’이라 한다.)하며, 그것은 밀교부에 소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천수경』을 연구하는 것은 곧 밀교를 전공하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 『천수경』의 특수성이 놓여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천수경』(이를 ‘독송용 『천수경』이라 부른다.)은 ‘원본 『천수경』’ 안에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읽고 외우기 쉽도록 편집한 의식용 의문(儀文)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의 글을 밀교에서는 의궤(儀軌)라고 부른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읽고 외우는 ‘독송용 『천수경』’은 하나의 경전이라기보다 의궤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의궤로서의 ‘독송용 『천수경』’을 현재 우리의 밀교종단들에서는 그대로 읽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할 것이지만, 바로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천수경』을 연구하는 일이 곧 밀교를 전공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법적으로 내 전공은 ‘고대 인도철학’이고, 현재 나는 인도철학과에 소속된 교수이다. 그럴진대 고대인도철학을 연구하는 일 외에 『천수경』을 연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일까? 그럼으로써 왜 나는 내 학문을 전공이 없는 잡학(雜學)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가? 이 글들이 그에 대한 대답을 암시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바로 내게 있어서 『천수경』은 학문연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삶, 나의 수행, 그리고 나의 신앙과 깊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천수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엄밀한 학문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신앙적, 수행적, 그리고 실존적 삶의 문제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천수경』을 이야기할 때는 엄밀한 학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신행적 차원에서이다. 불자가 교수에 앞서는 것처럼, 신행은 학문에 앞선다. 거기에 내 학문의 한 성격이 놓여있다.

이미 『천수경』에 대한 해설서는 많이 출판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수경』의 의미나 가치가 우리에게 충분히 인식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천수경』을 수행적, 신행적 차원에서 충분히 천착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수경』이 우리의 신행생활에 대한 지도지침서라고 하는 점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천수경』을 연구하는 내 자신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에 그 책임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열 번에 걸쳐서 ‘독송용 『천수경』’과 ‘원본 『천수경』’을 함께 아우르면서 『천수경』이 우리에게 어떤 수행의 지침을 제시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신행론의 입장에서 본 『천수경』, 그 이야기를 마저 해야 하기에 나는 아직도 『천수경』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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