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님 그리면 法音이 들려요”
“불보살님 그리면 法音이 들려요”
  • 이재형
  • 승인 2004.07.1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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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수행 청각장애인 최 성 환 씨
두살 때 청각 상실…자살 꿈꾸기도

만봉스님 문하에서 7년째 불화공부


청각장애인 최성환(29·일광·사진) 씨. 수원에 살고 있는 그는 매일 오전 7시 30분이면 서울 봉원사로 향한다. 보통 전철을 이용하지만 오늘은 저녁 약속 때문에 부득이 차를 몰고 나왔다. 그에게 운전은 늘 긴장의 시간. 언제 끼어들지 모르는 도로의 무법자들을 항상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시절부터 희망보다 절망을 온 몸으로 배워야 했던 최 씨. 그에게 서울 봉원사는 이제 삶의 디딤돌을 하나하나 놓아가는 희망이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어린시절부터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배워야 했던 최성환 씨. 이제 그에게 불화는 곧 삶 자체다.


최 씨가 인간문화재인 만봉 스님에게서 불화를 배우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가 어머니 성부연(56·정진심) 씨와 함께 갔던 전시회에서 스님이 직접 그린 불화를 처음 봤고 만봉 스님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이 받아들여져 최 씨는 만봉 스님의 제자로 받아들여지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두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심한 열병을 앓은 뒤 더 이상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최 씨. 집의 울타리를 벗어난 이후 처음 맞닥뜨린 세상은 그를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자살을 꿈꾸기도 여러 번. 하지만 그 끝에는 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그를 붙잡고는 했다. 이런 그에게 불화를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는 선 그리기를 시작으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불화를 그린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더욱이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그에게는 몇 곱절 힘든 일이었다. 그는 선배들에게 열심히 물었고 선배들 또한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7년의 세월. 그는 지난 2월 난생 처음 간절한 서원을 세웠다. 최 씨가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광림사 연화복지원에 자신이 직접 불화를 그려 봉안하기로 한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봉원사에서 불화공부를 마치면 수원집 대신 송파구 석촌동 있는 광림사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보살님과 신중님들을 정성껏 그려나갔다.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입술은 부르트고 눈은 빨갛게 충혈됐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하신다는 자비로운 보살님. 마음이 해이해질수록 절과 참선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100여일. 마침내 불화가 완성됐다. 땀과 눈물로 그린 불화였다. 최 씨는 불화를 정성껏 말아 스승 만봉 스님께 보여드렸다.

“애는 많이 쓴 것 같은데 아직 멀었어.”

칭찬인 듯 꾸지람인 듯한 큰스님의 한 마디. 최 씨는 큰스님의 말과 눈빛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꼈다.

“한없이 부족한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주시고 이렇게 불화를 지도해주시는 스님의 은혜를 갚으려면 더욱 열심히 하는 일 밖에 없죠.”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최 씨. 그는 한 획 한 획 불보살님을 그릴 때마다 불보살님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는 곧 그가 모든 원망과 서러움을 내려놓고 무심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앳된 얼굴. 최 씨는 환히 웃으며 수화로 말을 건내왔다.

“내가 불화를 그리는 것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동시에 30만 청각장애인에게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큰스님과 같은 훌륭한 불화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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