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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기자명 이재형

화두를 붙잡고 無門에 들다


<사진설명>강진 백련사 전경. 염불 중심의 백련사결사가 시작된 곳이다.

서울에서 강진까지 천리 길. 꼭두새벽에 길을 나서 백련사(白蓮寺)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잘 닦인 아스팔트가 끝나는 곳에서 백련사의 명물 동백 숲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계절 푸른빛을 띠고 있는 동백들이 절 마당까지 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일주문인 셈이다. 긴 장마 뒤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에 터널 안 여기저기서 동백 잎이 생선비늘처럼 반짝인다.

다시 300여 미터 동백 길을 오르자 수십 미터는 족히 될 팽나무 뒤로 천년가람이 펼쳐져 있다. 백련사는 만덕산(萬德山)이 가람을 보듬는 형상이고 앞으로는 툭 트여 개간지와 강진만이 비단 띠마냥 휘돌고 있는 천혜의 도량으로 손꼽힌다.

백련사의 옛 이름은 산 이름과 같은 만덕사로 839년(문성왕1) 무염(無染) 대사에 의해 창건됐다. 그러나 백련사가 수행도량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211년 원묘국사 요세 스님이 크게 중창하면서부터다. 한 때 수선사(현 송광사)에 머물며 보조국사와 정혜결사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던 스님은 이곳에 터를 정한 후 지역민과 관리들의 후원으로 21년간의 대불사를 통해 대규모 가람을 완성했다. 이후 실천중심의 수행자를 모아 시작한 것이 바로 백련결사(白蓮結社)다.

정혜결사가 지식인 중심이었다면 백련결사는 일반인들이 대거 참여한 민초들의 결사였다. 정토왕생을 위한 염불수행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결사체였던 만큼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업장이 산과 바다 같음을 알아 이를 없애는 참회멸죄(懺悔滅罪)와 매일 아미타불을 10만번씩 염불하며 정토에 태어날 것을 바라는 정토구생(淨土求生) 수행에 전념했다. 이런 수행가풍 때문인지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 고려의 8국사를 배출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대다수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백련사도 침체의 길을 걷게 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수행도량답게 그나마 선지식을 배출해 조선불교의 보루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유배를 내려오면서부터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당시 주지였던 아암혜장 스님을 알게 되고 스님의 도움으로 지금 다산초당이 있는 귤동마을 뒷산으로 옮겨온다. 이 때부터 다산과 혜장 스님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고, 다산이 유배의 시름이 힘겨울 때면 백련사에 찾아와 차를 마시기도 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약 800미터로 대숲과 소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왕복 30~40분이면 너끈하다.

백련사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승속을 떠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마음의 번뇌를 닦아내고 자신의 바람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 스님은 우연히 이곳에 들렸다 수행하기에 너무 좋다며 현재 1000일 기도에 입재해 정진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백련사를 수행도량으로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무문관(無門關) 영향이 크다.

응진전(나한전)에서 산길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무문관 만덕선원은 조용하면서도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지난 2002년 4월 처음 입제 방부를 받기 시작한 무문관은 전 주지 혜일 스님이 1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것으로 건평 40평에 5개의 방이 갖추어져 있으며, 욕실과 방음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무문관은 말 그대로 밖에서 열쇠를 채우고 일정기간 동안 그곳에서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용맹정진 하는 곳으로, 계룡산 대자암(93년), 제주 남국선원(94년), 인제 백담사(98년)에 이어 백련사가 4번째다. 하루 한번 제공되는 식사를 하며 외부와 완전히 끊긴 절대고독 속에서 화두를 꿰뚫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 그 힘겨움이야 그 어디에 비할까만 그만큼 수행의 진전도 보다 깊어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이러다보니 해제를 한 뒤에 방부신청을 받는 일반 선방과는 달리 이곳은 결제 중에도 다음 결제 때 이곳에서 꼭 수행하고 싶다는 납자들의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 또 무문관에서 다시 산길로 5분 정도 올라가면 토굴이 있다. 이곳도 역시 수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현재 이곳에서 정진하는 스님은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정진하고 있기도 하다.

백련사는 선승들이 마음 편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염불원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백련사가 오랫동안 수많은 염불행자들의 도량역할을 해왔듯이 오늘날에도 염불도량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백련사 주지 법상 스님은 “이곳 절은 수많은 민초들의 비원이 깃든 민중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며 “힘들고 척박한 시대마다 결사와 수행으로 불교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듯 오늘날 한국불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061)432-0837

강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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