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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찬 붓다다사 스님(상)

기자명 법보신문

‘해탈의 정원’서 태국불교 개혁 단행

태국 남부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원이 없다. 다만 70 여년 전에 한 비구에 의해서 창설된 숲속의 수행도량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이 ‘해탈의 정원’이라는 의미의 수안 목(Suan Mokkh)이다. 필자는 1995년 12월 19일에 남부의 수랏 타니(Surat Thani)의 차이야(Chaiya)에 있는 수안 목을 방문하여 조사한 적이 있었다. 아찬 붓다다사가 입적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찬 붓다다사가 수안 목에서 펼치려고 했던 삶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아찬 붓다다사 스님은 고독하고 엄격한 수행을 하면서 경·율을 연구한 후 불교개혁을 시도했다.


아찬 붓다다사(1906-1993)는 26세의 약관의 나이인 1932년에 자신의 고향에 수안 목을 창설하였다. 이곳은 아찬 붓다다사가 주장하는 새 불교 운동 즉, 초기 불교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면서 수행을 하자는 내용을 중심 사상으로 하는 불교 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 수행도량의 구석구석에는 이러한 아찬 붓다다사의 이념이 잘 나타나 있다.

타락한 승단에 환멸

이곳에는 조석으로 예불을 하는 법당이 없고 넓은 숲 속의 나무 아래에 불상이 안치되어 그곳에서 예불을 한다. 또한 숲 속의 지정된 장소에서 포살(uposatha;매월 2 번 승려가 한 곳에 모여 계율을 합송하는 의식)을 한다. 이것도 아찬 붓다다사의 불교 운동 이념의 일환으로 표현된 것이다.

아찬 붓다다사는 태국의 근대화 정책이 시작되던 1906년, 태국 남부의 수랏 타니(Surat Thani)의 차이야(Chaiya)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8세에 사찰에서 교육을 받아 온 그는 22세의 나이에 자연스럽게 비구로 남아 있을 결심을 한다. 출가 후 고향에 있는 사찰에서 우수한 젊은 승려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수도인 방콕의 사찰로 옮겨 온 뒤 그의 인생은 새로운 회의와 전환을 맞이한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대부분 의례나 의식에만 빠져 있는 방콕의 승려들의 모습에 깊은 환멸을 느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전하고 있는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고려시대의 타락한 불교 승단을 보고 환멸을 느껴 정혜결사를 시도했던 보조 스님을 연상케 한다.

1932년, 태국에 민주혁명이 일어나던 해, 아찬 붓다다사는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과감히 기존의 승단에서 나와서, 고향인 차이야 근처에 수안목(Suan Mokkh)이라는 도량을 마련해서 새로운 불교 개혁을 시도하게 된다. 약 2년 동안 그는 이 정글 속에서 고독하고 엄격한 수행을 하면서 경장과 율장을 연구한 결과,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에 있으며 누구나 바로 지금 체득할 수 있는 경지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아찬 붓다다사는 ‘해탈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이 세계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불교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어주는 일이었다. 이해란 개념들이 지닌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를 간파할 수 있는 개개인의 통찰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의 기본적인 원리였다.

수안 목에는 태국의 다른 사찰과는 달리 금빛 찬란한 불상들이나 호화로운 장식들을 전혀 볼 수 없다. 넓은 정글과 코코넛 숲속에 가르치고 수행하고 숙식할 수 있는 공간들만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붓다다사 스님은 이렇게 해탈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 놓고 출가자, 재가자, 남녀노소,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개방하였다. (『남방불교의 가르침』 강진아편, 1993년 불교시대사 참조)

<사진설명>붓다다사 스님은 자신의 도량 '해탈의 정원'을 남녀노소,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개방했다.


空-무아실천 경조

아찬 붓다다사의 수행의 방침은 스님의 글인 「수안목의 수행 법」 The style of practice at Suan Mokkh(part 1, 1990)에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은 남방 상좌부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청정도론(Visuddhimagga)』의 선정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는 부분(p.25, n.3)으로, 남방상좌 불교보다는 초기불교 정신에 충실하려는 태도가 잘 나타나고 있다. 아찬 붓다다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수행센터에서 행해지는 수행의 원리는 팔리 원전과 주석서에서 직접 수집한 것이다. 각 수행자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수행법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우리의 수행의 노선은 미얀마식이라거나 스리랑카식이라거나 태국식이라고 또는 이 사원의 방식, 저 사원의 방식이라는 어느 특정한 사원의 방식이라고 또는 이 스승의 방식 저 스승의 방식이라고 불릴 수 없다. 우리는 붓다가 직접 가르친 팔리 경전에서 우리들 각자가 개인적으로 선택한 방법으로 수행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팔리 원전과 모순이 있는 곳이 있다면 주석서나 『청정도론』과 같은 특별한 논서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찬 붓다다사의 수행법으로는 입출식념을 닦을 것을 권하며, 마하시 수행법과 같은 수행의 보고나 점검은 없다고 한다. 특별히 수행법에 대해서 지도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방법을 따라서 스스로 수행을 하도록 한다.

아찬 붓다다사는 수안 목의 건립 시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이곳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원이 서로 좋은 벗(善知識)의 관계로 서로 서로 의지하며 수행하는 것을 생활의 규범으로 했다. 따라서 아찬 붓다다사는 이 사원에서 살고 있는 대중은 누구나 선지식이므로 설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찬 붓다다사의 설법은 수행법보다는 연기(緣起), 무아(無我), 공(空) 등의 교리에 대한 것이 많았으며, 무아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재성 (경전연구소 소장,
metta4u@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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