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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우루벨라 Ⅰ

기자명 법보신문

붓다, 고행의 숲에서 쓰러지다

“육체의 달콤한 쾌락 버리고 나면
“온전한 깨달음을 만날 수 있을까”


<사진설명>네란자라 강에서 바라본 전정각산. 오른쪽으로 세나 마을의 고행림이 펼쳐져 있다. 붓다는 이곳에서 6년간 죽음을 무릅쓰고 고행을 했다.

알라라와 웃다카 스승의 가르침을 충분히 소화했음에도 원하는 해답을 얻지 못한 붓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게 가르침을 줄 스승은 없는 것인가.”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밖에 없음을 깨달은 붓다는 마가다 왕국의 우루벨라로 갈 것을 결심하고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신흥 강국이었던 마가다 국 곳곳에는 제각각 독특한 수행법을 가지고 수행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고행은 가장 인기있고, 인정받는 수행법이었다. 당시 고행을 수행의 방편으로 선택한 수행자들은 대부분 우루벨라에 모여 있었다. 이런 이유로 우루벨라는 고행촌(苦行村)으로 불리기도 했다.

“나는 알라라와 웃다카 선인 아래에서 명상의 기법을 익혔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 경험한 해방감은 명상 중에 있을 때나 느낄 뿐이다. 명상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온갖 욕망들이 다시 나를 짓누른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들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도 고행에 그 길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좋은 음식으로 육체를 살찌우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어떻게 내 정신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젖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수는 없다. 방자한 감각에 길들여진 육체는 젖은 나무토막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제 고행을 통해 깨달음의 길을 찾아보리라.”

<사진설명>수자타 아카데미가 위치한 둥게스와리 세나 마을의 고행림

우루벨라에 도착한 붓다는 네란자라(니련선하) 강가를 따라 펼쳐진 넓은 평원 한 켠에 자리 잡은 외진 산기슭을 걸었다. 붓다는 걸음을 멈추고 한 나무 그늘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고행자들이 머무는 오두막이 서 있다. 한참을 앉아 있노라니 수행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고행을 닦다가 오두막을 빠져나와 강가로 가서 목욕을 하고는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붓다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이곳은 수행을 하기에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수행에 딱 맞는 곳이지요. 강이 가까워 물이 충분하고 들판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탁발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샤카족 출신의 싯다르타입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무상과 생사고뇌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방법을 찾고 있지요.”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도 찾고 있는 것이요. 우리가 이곳에서 고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 수행을 해보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행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어떤 방법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했던 그에게 함께 수행하는 동료들이 생겼다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붓다를 수행의 동료로 흔쾌히 받아들인 이들은 훗날 붓다의 초전법륜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된 다섯 비구, 즉 마하나마 쿨리카, 다사발라 카샤파, 바드리카, 아쉬바짓, 아즈냐타 카운딘냐 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다섯 비구가 슛도다나 왕의 명령으로 붓다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카필라바스투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셈이다.

순례 일행이 우루벨라에 도착한 때는 오전 10시 경. 햇볕이 시시각각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우루벨라는 거대한 백사장과 강줄기, 백사장 사이로 형성된 야자나무 숲으로 형성되어 있다. 날이 흐렸고 모래알마저 바람에 흩날리는 통에 어렴풋이 보이는 전정각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건기인 탓에 가뭄이 들어 광활한 네란자라 강에는 실개천 같은 물줄기가 힘겹게 흐를 뿐 삭막한 기운이 가득차 있다. 강가에 형성된 밭두렁을 가로질러 모래사장으로 들어서노라니 이곳을 찾는 순례객의 안내를 자처하는 한 노인이 기수처럼 앞장을 서고 있다. 이곳을 자주 찾았을 가이드에게 물으니 우루벨라를 찾는 순례객들을 맞아 안내하고는 순례객들이 주는 보시를 받아 살아가는 노인이란다. 나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하는데 겉으론 적어도 70은 훌쩍 넘긴 모습이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10여 분쯤 걸어 야자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어린 아이들이 십여 명 모여들어 우리 일행을 뒤따르고 있다. 끊임없이 옹알옹알 대는데, 아마도 돈을 달라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한 아이에게 돈을 주는 날에는 순식간에 수십 명이 모여들어 낭패를 본다는 가이드의 사전 경고가 있던 터라 누구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야자나무 아래 적당한 곳에 순례 일행들이 모여 앉았다. 이곳이 붓다가 고행을 했던 곳이라는 생각에 일행의 표정들은 조금은 비장한 듯 보인다. 순례단장 격인 동산반야회 김재일 법사의 지도에 맞춰 삼귀의와 반야심경, 석가모니불 정근을 한 후 잠시 선정에 들었다.

<사진설명>네란자라강 모래톱에 위치한 야자수 고행림

인도의 어린이들도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우리 일행을 그대로 흉내 내며 저희들끼리 마주보고는 낄낄거리고 있다. 햇볕에 그을리고 제대로 씻지도 않아 몹시 지저분한 얼굴이지만 미소 짓는 얼굴만큼은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저 표정은 행복의 표현일 것이 행불행이 결코 물질에 있지 않음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일 것이리라.

모래알이 바람에 날려 실눈조차 하기 어려워 아예 눈을 감았다. 막상 눈을 감고 나니 야자나무 이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온다. 큰일이라도 벌어진 듯 그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어느 순간 두려움마저 밀려들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일렁이더니
바람의 성정이 갈수록 거칠다 .
야자 이파리는 단말마 지르고
강 건너 전정각도 움찔거린다.
한낱 바람이 이리 무섭다니,
내 이토록 작은 존재였다니.
내도 모를 나 불식간 모래 되어
고행 숲 속살을 후벼 파고 있다.
-우루벨라 고행림에서

붓다는 고행을 해온 선배들로부터 앞으로 닦아나갈 고행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 배웠다. 그날 오후, 붓다는 산자락 외진 구석의 적당한 곳으로 가서 주변을 정돈한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알라라와 웃다카로부터 배운 감각 제어법으로는 욕망의 근원인 육체를 제어할 수 없었던 붓다가 막 고행 길로 접어들고 있는 뜻 깊은 순간이었다. 붓다는 우선 호흡을 억제하고 코를 통한 호흡량을 줄여가는 수행을 거듭했다. 이를 악물고 혀로 입천장을 눌러대는 행위를 통해 온몸의 고통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머리, 턱, 목, 귀, 가슴, 배 등으로 압박부위를 확산시키며 마음을 자유자재로 압도할 길을 모색했다. 호흡을 억제하고 호흡량을 줄이는 훈련을 쉼 없이 거듭했다.

귓속에서는 격렬한 돌풍이 일어나는 듯했고, 칼끝으로 뼈를 상처 내는 통증, 머릿속을 후벼 파는 고통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됐다. 탁발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먹는 양을 최소화했다. 고행의 강도는 점점 높아갔고 붓다의 육신은 휑하니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붓다의 열정은 격심한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이 야위어 그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는 동물의 발자국 같은 것이 남았고, 척추는 염주 가닥처럼 뼈를 드러냈다. 갈비뼈는 무너진 집의 서까래마냥 돌출되었다. 눈은 움푹 파였고 머리 가죽은 설익은 조롱박처럼 말라비틀어졌다. 뱃가죽은 등가죽에 붙었고 팔다리에 난 털조차 바스러져 부서질 정도였다.

상상을 뛰어넘는 붓다의 고행에 함께 수행을 했던 수행자들은 그 초인적 정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은 곧 존경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부디 목표를 이뤄 자신들을 이끌어줄 것을 기대하기에 이르렀다. 다섯 비구는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붓다에게 가끔씩 물을 떠나주거나 몸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으로 도움을 주곤 했다.

붓다는 죽음을 무릅쓰고 단식을 거듭했다. 그러나 깨달음에 대한 열정과는 정반대로 육체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붓다의 몸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한계에 이르자 붓다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쓰러진 붓다의 몸에는 호흡마저도 느끼기 어려울 만큼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고행자가 죽었어요!” 마침 소를 몰고 근처를 지나던 목동이 쓰러진 붓다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달려가 가족에게 긴급히 사실을 알렸다. 고행자에 대한 존경심이 깊었던 목동 가족들은 붓다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옮겨 정성껏 간호를 다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큰 법. 목동 가족의 정성으로 기력을 되찾고 있는 붓다를 바라보는 다섯 비구의 눈길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우유를 마시고 음식을 받아먹는 붓다를 지켜보면서 그가 고행을 포기한 것에 크게 실망하고 탄식하면서 우루벨라를 떠났다.
기력을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 우루벨라에 머물던 붓다는 생각했다.

“아무리 혹독하게 고행을 하는 수행자들도 나만큼은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실로 나의 고행은 나를 버리고 떠나간 저들의 수행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나는 궁극적 목표인 해탈의 희미한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초월적 지혜도 통찰력도 얻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바른 길이 아니다.”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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