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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청산 왜 필요한가

기자명 법보신문
최 훈 동
한별정신병원장


정신치료에서는 흘러간 과거가 사라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개인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작용을 한다. 과거의 아픈 상처이건 좋은 기억이건. 좋은 환경과 학습은 건강하게 작용하고 나쁜 기억과 상처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의지와 무관하게 과거를 회상, 반추하며 살고 있고, 오지 않은 앞날을 걱정하거나 설계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다. 정신치료의 분석 과정에서 과거의 경험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 탓으로 돌리거나 환경 탓으로 돌려 버리고 원망하는 마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좌초하여 제자리에서 빙빙 돌게 된다. 과거의 경험을 오늘도 되풀이할 뿐만 아니라 세대를 걸쳐 물려준다. 남에게 투사한 부분을 자신 안에서 찾아 그 응어리를 풀어가는 작업이 정신치료이다.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주체로우며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전환된다.

종교적으로도 지난날 지은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하고 용서받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율로 엄격하게 윤리적 덕목을 정해 놓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계율은 최소의 구원 조건이다. 계율을 위배하고 천국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저지른 잘못을 영원히 구제 받을 수 없다면 그것 또한 불합리하다. 진정한 뉘우침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과 이를 용서하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과정이 결합된다. 매월 모여 자신의 잘못을 대중에게 고해하는 포살과 남의 잘못을 일깨워주는 자자는 불교 승단의 참회 의식이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정신치료의 원형이다. 영적 치유를 전제하지 않은 고해는 단순한 의례 행위로 그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과거사 청산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책임 규명보다 고백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변명으로 자기 방어에 급급하거나 진실을 덮어버리고 오히려 왜곡시키려는 부정직은 또 다른 죄악을 낳는 조건이 된다. 요즈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뻔한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고 강변하는 것은 욕망에 기인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일도 가능하고 매국도 가능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역사 왜곡과 점령도 가능하다는 마음은 힘으로 약자를 도모하는 죄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우리의 근세 100년의 역사는 오욕과 변화로 규정된다. 급변하는 세계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외세의 강점을 허용하고 또한 외세에 의해 해방되고 외세에 의해 분단되고 외세에 의해 민주주의를 도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모두 외세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반성도 아니고 도움도 얻을 수 없다. 당시의 내부적 조건을 외적 상황과 함께 면밀히 돌아보아야 한다.

병원에 가기 싫다고 병을 안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과거사 청산은 정말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의 잘못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차원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가해와 피해로 끝없는 싸움의 시발이 된다. 처벌과 복수로 점철되는 상극이 되어서는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 집착일 뿐이다. 잘못을 비난만하고 꾸지람만 해서는 잘못이 시정되기 어렵다. 더욱 잘못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을 고백하고 그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겸허하게 반성하고 잘못된 의미를 배우는 차원이어야 한다. 불가피한 잘못도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주체로운 앞날을 위해 과거의 짚어야 할 부분은 짚고 수술해야 될 부분은 과감히 도려내어 서로 살 수 있는 건강한 나라를 함께 이루어야 한다. 고해성사와 포살-자자 법회가 일상에서 실천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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