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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향해 가는 개혁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께서 입적하신 지 3개월 뒤, 오백 명의 아라한이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하던 중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소한 계율은 승가의 합의에 의해서 폐지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들은 아난다가 경황이 없어서 어떠한 계율들부터 그렇게 해도 좋은지 여쭙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오백 명의 아라한들이 논의한 끝에 아무 것도 고치지 않고 모든 계율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아무리 뛰어난 아라한의 안목이라 해도 부처님의 안목에는 미치지 못하고, 따라서 계율을 임의로 개폐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을 주관했던 사람은 선종의 초조인 가섭 존자였다.

부처님 직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이러한 전통이 처음 깨어진 것은 부처님 입멸하신 지 100년 뒤 바이샬리에서였다. 소금을 보관하는 문제나 신도들로부터 돈이나 보석류를 보시받는 계율의 해석에 있어 융통성을 주장한 대중부와 기존 원칙의 고수를 주장한 상좌부의 주장이 맞서 결국 교단은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중부의 입장이 대승불교로 이어지며 현재의 한국불교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항상 개혁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대중부이후의 대승불교의 역사는 개혁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계율을 고치고, 생활규범을 고치고, 교리적 관점을 고치고, 경전까지 새로이 만들어내고 있다.

시대적 상황과 지역적 특성에 맞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용한다는 것이 근본 취지이겠지만 이것이 지나칠 때 본질마저 상실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요즈음 한국불교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부처님 당시의 승려들은 옷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분소의를 입었다. 분소의란 버린 천들을 모아 기워서 만든 옷이다. 요즈음의 한국 승려들은 자신의 돈으로 고가의 승복을 사서 입으며, 부처님께서 승려들의 옷으로 규정한 가사를 평소에는 입지 않고 특별한 의식이 있을 때에만 입는다. 음식 맛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심하는 자세를 기르며, 시주자들에게 보시 공덕을 짓게 하기 위한 탁발의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고 오히려 금지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크기의 제한까지 두었던 승려들의 개인 수행처인 소위 토굴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지나치게 풍족해져 가고 있다. 세속법을 모방한 선거가 절집에서 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출가 연령 제한이 생겨, 40이 넘은 사람들은 이제 부처님 제자가 될 수도 없다. 40이 넘어 발심하여 출가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종단에서 받아주지 않아 뜻을 접고 주저앉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국불교에서 끊임없이 개혁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임의로 고친 법규나 생활 규범들이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다시 새로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지고,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종교에서의 진정한 개혁이란 항상 교조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며 그릇이 다 깨졌을 때 내용도 상실되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한국불교에서는 계속적으로 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그 개혁의 방향이 초기불교 교단의 수행자 정신으로 돌아가는 방향,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원칙과 규정으로 최대한 가까이 되돌아가는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근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닐까?

지산 스님
남양주 봉인사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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