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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

기자명 법보신문

오대산 도인 한암 스님
禪旨 성성한 북방제일선원

한암 스님 결기로 6.25 참화 피해

2002년 문수전서 독립… 20명 결제


<사진설명>상원사 청량선원의 전경. 2002년 150평의 터에 건물을 지어 문수전 더부살이를 끝내고 청산하고 독립했다. 결제때마다 20여명의 수좌들이 안거에 들고 있다.


부엌에서 불붙이다 홀연히 눈 밝으니
이걸 꽂아 옛길이 인연을 따라 분명하네
나를 보고 서래의를 묻는 이 있다면
바위 밑 우물 소리 젖는 일 없다하리.

마을 개 짖는 소리 손님인가 의심하고
산새들 울음소리 나를 조롱하는 듯
만고의 빛나는 마음의 달이
하루아침에 세간의 바람 쓸어버리네.
- 한암 스님 오도송


새벽 아침 가을 바람을 타고 오대산에 올랐다. 태초의 숨결을 간직한 채 울창하게 늘어선 전나무 숲길. 울긋불긋 단장한 가을은 스치듯 얼굴을 내밀고 중첩된 산 사이로 매끈한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다. 인적이 드물어 길 위에는 정적만이 흐리고 청량한 바람이 한없이 가슴을 쓸어낸다. 바랑 가득 화두 짊어지고 무거운 걸음을 옮겼을 운수납자에게 이 길은 침묵의 가르침으로 다가왔을 터. 북방제일선원(北方第一禪院) 상원사 청량선원(淸凉禪院) 가는 길은 초입부터 세상의 속진(俗塵)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대산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월정사에서 8.8km를 더 올라가 해발 900m에 자리한 상원사 청량선원. 산중턱 언덕에 터를 닦고 자리잡은 이곳은 근세 선불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량이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을 비롯해 수월, 운봉, 동산, 탄허, 서옹, 고암, 법룡 스님 등 한국 선불교를 풍미했던 선지식들이 두루 거쳐간 곳으로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허나 ‘오대산 도인’으로 불렸던 한암 스님(1876∼1951)의 체취를 접하고 나면 절로 옷깃이 여며지는 숙연함을 감출 수 없다. 1925년 서울 봉은사 조실이었던 한암 스님은 “천고의 자취를 감춘 학이 될 지언정 삼촌(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으리라”는 말을 대중들에게 남기고 상원사에 은거했다. 수행 공간이라고는 법당인 문수전과 작은 전각이 전부였지만, 문수전을 선방삼아 동구불출 정진했고, 그 명성에 탄허, 효봉, 서옹, 고암 스님 등 선지식의 발길이 이어졌다. 안거를 들일 때마다 80여명이 넘는 대중들이 몰려 가난한 살림에 감자밥으로 연명하며 정진했지만 그 치열함은 어느 선원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북방제일선원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한암 스님이 75세 되던해, 스님의 행적은 선지식의 경계를 보여준 일화로 유명하다. 한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당시 공비들의 소굴이 될 수 있다며 상원사를 불태우겠다는 아군에게 스님은 법당과 함께 죽겠다며 법당에서 가부좌를 튼 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군인들은 문짝만을 태우며 법당을 태우는 시늉만을 한 채 돌아갔고 상원사는 전란 속에서도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명산과 신령스런 강은 그 높이와 깊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인물에 의해 자우된다는 옛 사람의 가르침이 바로 이곳 상원사 청량선원을 두고 한 말이리라.
청량선원이 문수전에서 문수전 오른편으로 옮겨 오늘날의 모습은 된 것은 지난 2002년의 일이다. 한암 스님 이후 쇠락해 명맥만을 유지하다 지난 83년 급기야 문을 닫았고 10년이 지난 92년 현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한암 스님의 선풍이 다시 부활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선원은 법당인 문수전에서의 더불살이를 끝내고 문수전 오른편 150여평의 터에 새 건물을 지어 독립했다.

<사진설명>선방에서 수행정진하고 있는 상원사 주지 나우 스님.

상원사 주지 나우(懶牛)은 “선원이 독립된 뒤로 수행 환경이 더욱 좋아졌다”며 “역사적인 의미가 깃든 문수전을 대중들에게 개방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우 스님의 허락을 얻어 조심스럽게 들어간 선원은 고요만이 가득했다. 하얀 자갈이 깔린 마당을 지나 목재의 노란 색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선원은 정갈하면서도 깔끔해 보는 이의 마음마저 청량하게 해 준다. 수좌들의 수행 열기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을 선방은 해체철인 까닭에 텅빈 공간에 바람만이 들락거렸다.
다만 한쪽 벽에 정갈한 글씨로 써 있는 용상방과 가지런히 놓여진 방석에서 하안거의 치열했을 분위기만이 조심스럽게 읽힐 뿐이었다. 나우 스님은 “결제 때마다 상원사 20명, 북대 5명, 서대 1명 등 대략 26명 정도가 수행 정진하고 있다”며 “TV,신문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근래에는 자유 정진과 결제 중간의 소풍마저도 없애는 등 수행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고 말했다. 청량선원의 평소 모습은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계속되는 가행 정진, 그리고 묵언이다. 수행에 대한 절박감과 긴장감이 선원 가득 내려 앉는다.

그러나 청량선원에 치열한 수행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산 기운이 부드럽고 온화하다보니, 선원도 이를 닮아 분위기가 화목하다는 것이 자랑이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이 선원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수행에 큰 진척을 보인 이들이 많다는 것이 선원을 거쳐간 이들의 설명이다.
상원사 주지 나우 스님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옛것을 고집할 생각이 없으며 대중들에게 파고 들 수 있는 수행관을 정립해 보급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밝혔다. 또 “수행에 대한 신비주의적 환상과 깨달음을 로또 복권쯤으로 생각하는 세간의 잘못된 수행관도 교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수행의 깊이를 묻는 우문(愚問)에 대해 “고요히 생각을 그치고 스스로를 관조하면 현재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가장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며 “그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지리산 칠불암에서의 3년에 걸친 동구불출(洞口不出) 정진, 그리고 청량선원에서만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스님의 수행의 날이 부드러운 오대산을 닮아가고 있었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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