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기쉬운 불교교리 - 거짓말하지 말라

기자명 법보신문

나쁜 의도는 사실을 왜곡시켜

언론사 문제

요즘 언론사문제를 두고 시끌벅적 합니다. 한 쪽에서는 정당한 법집행에 대해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법을 빙자해서 자신의 개인적 야욕을 채우려는 데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본적 인식차이가 정치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극단적 정치대립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언론에서는 신문사간의 상호비판과 신문사 대 방송사의 대결구도로 벌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글 좀 쓰고 가방끈 길다는 사람들끼리 서로간의 의견대립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한 가지이고, 이 두 쪽이 다 옳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 쪽이 비교적 진실에 가까운 말을 했다면, 다른 한 쪽은 진실보다는 거짓을 말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태는 결국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으로 결판이 납니다. 그러면 도대체 거짓말이란 무엇일까요?

불교의 5계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거짓말이란 액면 그대로 진실 아닌 걸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한 평생 다 사실과 진실을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의 삶에선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엄청난 거짓말이 될 만큼 그건 불가능한 겁니다. 그 정도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건 매우 지키기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어디에 가야 되는데, 마침 아는 사람이 와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한다면, 이 때 꼭 그대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해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무슨 피치 못한 사정이 있어서 꼭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걸 거짓말이라고 탓한다면 좀 우스워질 것입니다.



거짓말의 종류

그건 너무도 형식에 얽매인 판단입니다. 거짓말에도 하얀 거짓말이 있고, 까만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얀 거짓말이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 둘러대는 것이라고 한다면, 까만 거짓말은 상대편을 망가뜨리기 위해, 파멸시키기 위해, 그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사실과 반대되는 정보를 흘리는 겁니다. 그러면 거죽에 나타나기는 동일한 거짓말이지만,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일을 벌렸느냐에 따라 그 평가를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가 중시됩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대학입시에 떨어져 낙담하고 있는 친구에게, “내 그럴 줄 알았다. 펀펀히 놀고서 무슨 대학이냐? 다 때려치워!”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이 말이 분명한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 당사자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면서 방탕하게 시간을 낭비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을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같은 사실을 전달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애정을 갖고 간곡히 표현했을 경우, 방탕한 삶을 살았던 친구를 설득시킬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아무리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손 쳐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난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야. 내가 무슨 공부냐!’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이런 말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여기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건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는 어떤 의도로 말했는가에 더 큰 비중이 있다는 겁니다. 거짓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도를 보라

이와 같이, 말을 하는 것도 그 의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을 최근 언론사의 보도에 적용해봅시다. 추미애 의원이 “뭐 같은 조선일보”라고 욕한 걸 대대적으로 보도한 어떤 언론사의 태도를 살펴봅시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신문사 주장대로 여권의 힘있는 의원의 언론관이기에 비중 있게 다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렇게 보도한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을 전달했지만, 그를 통해서 언론사 세무사찰이 이런 왜곡된 언론관에 의해서 조작된 것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면, 이건 또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거짓말이 됩니다. 사실을 전하고 있지만, 결국은 거짓말로 바뀌고 마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언론의 가장 큰 병폐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이 점은 지금 정부에서 여러 가지 강수를 두어가면서 왜 언론개혁을 단행하고 있는지 그 정당성을 역설적으로 잘 나타내 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참, 당사자들은 잘 한다고 하는 짓인데…. ‘사실성 거짓말’이 가장 경계해야 될 거짓부렁입니다.



이병욱 (고려대 강사)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