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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조실 고 산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허덕이는
그 마음을 쉬게 하라
大覺의 자리이니


(주장자 세 번 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요, 모든 사람 스스로가 천진한 부처로다.

각자 자신의 몸은 사대(地水火風)의 거짓으로 합했으니 일찍이 산 것이 아니요, 사대가 흩어져 여의었으나 일찍이 멸하지 아니 했으니 여러분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할!

망념은 본래 공해서 다시 여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망상 때문에 염불을 못한다, 참선을 못한다고 합니다. 망념은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립니다.

자꾸 떼려고 하니까 더 달라붙는 겁니다. 망념이 있든지 말든지, 달라붙든지 안 붙든지 염불하고 참선하면 그만 없어져버립니다.

지금 이 법문 들을 줄 아는 본성이 참 나입니다.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전부 미치광이 마음이라는 겁니다. 그 미친 마음, 허덕거리는 마음을 쉬어버리면 그 자리가 바로 보리요, 대각의 자리요, 부처님이 깨달은 자리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진성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찾아야만 합니다.

하루는 위산(山), 오봉(五峰), 운암(雲巖) 스님 세분이 백장(百丈) 스님을 동시에 모시고 섰는데, 백장 스님께서 위산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목구멍과 입술은 함께 쓰지 말고 어떻게 이를 것인고?”
위산 스님이 백장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되묻기를, “도리어 화상께서 이르시기를 청하나이다.”

그러니 백장스님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내가 너를 향해 이르는 것을 사양하지 않으나 이후에 나의 자손들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렇게 말하고 딱 잘라버립니다.
하루는 외도가 부처님에게 뛰어오더니 이와 같이 묻습니다.

“있다는 것도 묻지 않고 없다는 것도 묻지 않습니다. 있고 없고를 떠나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침묵하고 한참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외도가 한참을 있다가 일어나서 오체투지로 큰절을 하고 찬탄하며 이릅니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로서 저의 미한 생각을 깨우쳐 저로 하여금 진상에 들게 하셨나이다.”
외도가 간 뒤에 아난(阿難) 존자가 부처님께 묻습니다.

“아까 외도가 무슨 증득한 바가 있어서 진상에 얻어들었다고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어진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천리를 달리느니라.”고 하십니다.

혜원정사 법당에 모인 사부대중 모든 불자님들도 법사가 법상에 올라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한 소식 한 사람들은 법사가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세 번 칠 때 오늘 법문은 끝났다고 합니다. 어떤 스님은 30년 동안 법상에 올라가서 계속 동일한 법문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진리를 아는 사람은 다른 말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또 어떤 스님은 법상에 올라가서 아무 말도 안하고 내려갔습니다. 한날은 원주 스님이 뒤따라가서 스님에게 침묵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스님은 “강원에는 강사가 있고, 선원에는 선사가 있는데 내가 할 말이 무엇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옛날에 도오 선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한 날은 점원이라는 상좌를 데리고 한 신도의 집에 이르러 문상을 갔습니다.

스님이 향불을 올리고 “영가여,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니 도대체 어느 곳으로 가는고?” 라는 법문을 한마디 해주고 일어서려는데, 점원 상좌가 관을 똑똑똑 세 번 두들기고는 묻습니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여러분들은 죽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오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또한 말할 수 없느니라.”

그러자 점원 스님이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 합니까? 말하십시오.”라고 하니 도오 선사는 “나는 말 못해. 나는 말 못해”하며 나옵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점원 스님은 다시 말합니다.

“화상은 쾌히 저에게 일러주소서, 만약에 일러주지 아니하시면 화상을 치겠습니다.” 그러자 도오 선사는 “치고 안치는 것은 너에게 맡기되 말할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계속 말해달라고 해도 말을 못해주니 점원 스님이 막대기를 들고 도오 선사을 냅다 쳤습니다. 그래도 선사는 말하지 않고 계시다가 그냥 올라가버렸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오 선사는 열반하셨습니다. 결국 점원 스님은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점원 스님은 석상 스님을 찾아가서 앞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석상 스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니 석상 스님도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느니라”며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점원 스님이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하고 물으니 석상 스님은 “말못해, 말못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점원 스님이 이 말씀 아래 확철대오(廓徹大悟)했습니다. 그렇게 한소식 하고 보니 죽었다고도 말 못하고 살았다고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었다고 말하려니 분명히 살아있고,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오온육신이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그 자리는 생사거래를 여인 자리이니 살았다,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대답 한마디가 무서운 겁니다.

이 우주가 물이라고 생각할 때는 전체가 물이요, 불이라고 생각하면 전체가 불이요, 바람이라고 생각할 때는 전체가 바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흙 기운, 바람 기운, 물 기운, 불기운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릴 때도 촛불을 켜지 않고도 지극 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석가모니불을 지극 정성으로 부른다면 저절로 우주의 불이 초에 와서 당겨지고 향에 와서 당겨질 수 있습니다.

이쯤 되어야 정성이 들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괴종시계 한 5개를 주변에 두고 참선이나 염불, 간경, 주력을 해보십시오. 시간마다 소리 나게 해놓고 정진해 그 5개의 시계태엽이 다 풀리도록 매진해 보세요. 우리도 한참 공부할 때 시계 3개를 두고 『화엄경』을 공부했는데 자리 털고 일어나 보니 시계태엽이 다 풀어져 있었습니다. 경을 보더라도, 참선을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성취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늘 나 고산은 이 게송을 전합니다.

“도부도 당체관(道不道 當遞觀)하라. 법무생사 체현전(法無生死 現前)이로다. 이르고 이르지 못하는 그 당처를 관해보라. 그 자리는 본래 나고 죽음이 없고 바탕이 환하게 들어나 있도다.”

이 법문은 지난 12월 12일 부산 혜원정사에 모인 500여명의 재가불자들에게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이 설하신 초하루 대중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정리=부산지사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고산 스님은

“2005년은 을유년, 닭의 해입니다. 하루 종일 모이를 쪼아대는 닭과 같이 불자님들도 부지런히 정진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불자들에게 ‘근면 성실’을 당부한 고산 스님은 1933년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뒤 1948년 3월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1956년 3월 범어사에서 비구계 및 보살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1954년부터 범어사, 해인사, 청암사, 직지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며 19안거를 성만했다. 1961년에는 직지사에서 고봉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1961년 대덕법계를 품수하고 같은 해 직지사 강원 대교과를 수료했다.

1963년부터 청암사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비롯해 제10교구 은해사 주지, 제13교구 쌍계사 주지를 역임했다. 1991년 쌍계사 조실로 추대된 스님은 1998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스님은 평소 혜원정사 방장실에 주석하며 매달 초하루, 초삼일에 대중법문을 통해 불자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초의선사 다맥의 5대 전수자이기도 한 고산 스님은 최근 혜원정사 다도반의 교육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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