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이 마음을 본다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은 내마음이 만든 인생
꿈을 꾸듯 연극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렸을 때 만화 영화를 참 좋아했다. 특히 일요일 아침에 텔레비전을 통해서 방영되는 만화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즐겨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뇌리에 남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바로 ‘천년 여왕’ 이라는 제목을 가진 만화 영화다.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은 그 만화 영화가 가진 자세한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만화 영화가 가진 특유의 설정 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만화 영화 주인공은 평범하게 보이는 젊은 여성인데 사실은 그 여주인공이 평범한 외모와는 달리 지구를 일반 사람들 몰래 천년 동안 지배하는 여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여주인공은 본인이 천년 여왕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반 가정에서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해서 살고 있다. 이 만화 영화가 나에게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만화 영화로 남은 것은 바로 본인이 당연히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주변 인물들과 나와의 관계가 진실이 아니고 위장되어서 만들어진 가짜 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와 나의 가족들, 친구들, 학교 선생님 그 모두가 천년 여왕의 주변 인물처럼 각자의 배역을 맡아서 내 눈앞에서 연기하는 한바탕 연극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불교를 알게 되면서 이러한 의심은 유식학(唯識學)을 배우게 되면서 한층 더 깊어져 갔다. 내 눈앞에서 보이는 모든 일체가 나의 마음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나, 중생의 한마음이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둘로 나뉘어 그 안에서 이 둘 모두를 각각 따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로 잘 못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 모두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만화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현실에 대한 의구심과 많이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꿈을 꾸다 보면 꿈속에서 많은 대상들을 보고 만나고 경험한다. 하지만 그 꿈 안에서 보여지는 대상들은 우리의 의식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 호랑이를 보았다면 그 호랑이는 내 마음이 그려낸 영상일 뿐 꿈 밖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호랑이가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꿈속에서 보여지는 영상이 내 마음이 만들어 낸 영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실제로 내 의식과는 따로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러기에 꿈안에서 호랑이를 만나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꿈을 꾸는 이가 본인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꿈속에서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꿈에서 보여지는 일체 대상에 대해 초연해 지면서 그것들에 대한 집착 역시 다 끊어져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꿈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 마음 스스로가 만들어낸 영상을 우리 마음 스스로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우리 삶도 우리가 꾸는 꿈과 다름이 없다 한다. 내가 평소에 경험하는 모든 대상들 역시 나의 마음의 범주를 벗어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만들어 낸 모습을 내 마음이 보고 있다 한다.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그러셨던가.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번 멋지게 해보라고.

혜민스님 vocalizethis@yaho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