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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의 함의

기자명 법보신문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월 22일 육군 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천명하면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미·일·중·러 4대 강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동북아에서 분단국가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능력과 역량이 되느냐는 등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문제에 대한 ‘역사·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반도는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다. 따라서 19세기말부터 있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직접 대결했던 한국전쟁 등 세 개의 주요한 국제전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와 같이 강대국들이 밀접해 있는 동북아에서의 세력 각축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정치·외교적 자율성의 범주를 좁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소련-중국-북한의 북방 3각관계와 미국-일본-한국의 남방 3각관계의 대치점이 휴전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과 함께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했고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 탈냉전과 남북화해시대 한국은 북방 3각관계와 남방 3각관계의 중첩된 위치에서 쉽게 어느 편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그래서 어느 편의 입장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 나온 말이 ‘전략적 모호성’이란 개념인 것 같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말에 있었던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의 강화에 동의하고,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미사일방어(MD) 체제구축에 동의하는 듯한 공동발표문이 나오는 모순이 생긴 것도 우리의 정부의 고민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도 북방 3국의 반발 등을 의식하여 미국이 추진하는 MD 체제구축과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발언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취했던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노선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냉전시대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정 장관은 “한·미 동맹이라는 기본축이 있고, 오른쪽에 일본이 있으면 왼쪽으로 중국이 있는 한·일 협력과 한·중 협력, 이런 속에서 우리가 동북아에서 평화 선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냉전시대는 휴전선이 남방 3각과 북방 3각의 치열한 대치점으로 진영의 이익에 따라 공동보조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탈냉전과 남북화해의 진전에 따라 진영의 이익만을 고집할 수 없는 글로벌시대, ‘복합적 상호의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외교정책의 방향은 주변 국가들과 사안별 협력을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 군사안보협력, 일본과 경제협력, 중국, 러시아와의 교역 확대 등을 통해서 동북아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동북아에서 ‘신냉전질서’가 다시 도래하지 않도록 동북아 허브 국가로서의 균형자·조정자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이른 바 ‘대전략’은 브레진스키, 헌팅턴 등 대학자들이 저술로 나타나고 이를 정치가들이 정책으로 구체화한다. 우리의 경우는 정치권에서 먼저 대외정책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고 이를 둘러싸고 대책 없는 논쟁만 일삼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도 냉전시대 고정된 낡은 패러다임을 고집하면서 대안 없는 논쟁만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21세기 우리나라가 지향해야할 새로운 국가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고 유 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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