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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거지에게도 돈 주어야 하나

기자명 법보신문
부자 거지에게 보시하면 어떠랴
보살의 마음 낼 수만 있다면 족해


십 년전쯤 인도로 만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인도에 가서 보니 많은 성자(聖者)의 수만큼이나 거지들의 수도 참으로 많았다. 여행 내내 나처럼 외국인이다 싶은 사람들 뒤로는 어디를 가나 구걸하는 거지들이 따라 다녔고 특히 사원이나 절 입구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워낙 거지가 많다 보니 처음엔 구걸하는 이들에게 돈 몇 푼이라도 도움을 주었던 너그러운 마음이 한 1주일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시들해져 점점 야박하게 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도와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또 한 명 도와주면 어디선가 다른 거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들도 달라고 떼를 쓰니 처음부터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어떤 거지들은 사지 멀쩡한 젊은 나이의 거지들도 있었다. 무엇을 해도 최소한 먹고는 살 법한데 그 나이부터 거지라니 참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도 만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가게 되었다. 아는 스님 덕에 티베트의 여러 큰스님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저녁 식사 도중 갑자기 구걸하는 거지에게 돈을 주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질문으로 토론이 벌어졌다. 나와 같이 여행을 하던 도반 중 한 명은 거지들에게 자꾸 돈을 주면 남한테서 구걸하면서 사는 습관이 생겨서 다음 생에도 거지가 될 수가 있으니 그런 습을 끊어 주려면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어떤 다른 이는 거지들 대부분이 직업으로 거지 생활을 하는 소위 말하는 ‘짝퉁 거지’라 하면서 정작으로 배가 고파서 구걸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막상 티베트 큰스님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으셨다. 거지들도 불성을 가지고 있는 미래의 부처님들이고 우리들 또한 많은 생을 거치면서 어느 생에는 분명 거지 노릇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들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아무 조건없이 그냥 도와주라고 하셨다. 보시하는데도 자꾸 분별력을 부리다 보면 도움을 주면서도 아상(我相)만 더 늘어난다고 하셨다.

더욱이 돈을 받는 거지가 진짜 거지인지, 짝퉁 거지인지를 구분해 가면서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가짜 거지일지라도 전생에 본인의 가족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 보면 돈 얼마 보태 주는 것이 뭐 그리 억울한 일도 아니리라고 하셨다.

실제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 중에서도 길에서 구걸하는 이들에게 보시하는 것만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보시를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뿌듯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데 그런 느낌은 많은 돈을 주고도 절대로 살 수 없는 행복이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해진 후에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여유의 문제이지 돈이 많고 적음의 탓이 아닐 것이다. 넉넉한 부자 거지에게 속아서 그들에게 돈을 좀 주면 어떠랴. 돈을 건네면서 남이 좀 더 편안하게 살게 되기를 바라는 보살의 마음을 내가 낼 수가 있다면 나는 차라리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계속 속으면서 살아가련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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