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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기자명 법보신문
박 찬 희
중앙대학교 교수

저는 독실한 불자는 못됩니다. 남들 앞에서 감히 수행과 명상을 이야기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 애써 마음 속의 자신을 돌아보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일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업과 경제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을 어린이 불자들도 아는 가르침에 비추어 한번 더 되새겨보는 정도일 것입니다.

난감함과 조심스러움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제 겨우 40이 좀 넘었는데, 어어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여러 곳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늘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원래 일하던 분들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늘 하던 일을 늘 마주 보는 사람들과 하다 보니 일상의 덫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지요. 다들 처음의 각오와 참신함이 있었을 것인데, 어느새 자리 지키기가 목표가 되고 더 잘하려는 노력은 아련한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때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한 수재들도 제법 있는 직장들인데, 왜 그럴까요? 튀어봐야 손해 보는 직장과 사회의 관행,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조직의 논리 혹은 사회의 흐름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지 못하는 것도 이유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요즘 ‘혁신’ 얘기도 많이 하지만, ‘이 일은 왜 하는 것이며 어떻게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왕 어렵게 맡은 귀한 일, 조금은 더 의미 있게 더 잘하려고 노력하면 더 보람 있지 않겠습니까? 잘 모르지만, 내 일이라도 제대로 잘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는’ 노력의 작은 부분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며, 근본에 입각해서 차분히 생각하고 하나씩 고쳐가서 어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만 어쩔 수 없는 이해관계의 차이는 일단 논외로 한다고 해도, ‘한번 더 생각해서 풀어보는 노력’마저도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바쁘고 힘든 일상에 짓눌리는 것이지요. 솜처럼 지친 몸으로 만원 전철에 부대끼며 퇴근하면 하루를 돌아보는 여유조차 힘듭니다. 그럴 때면 고단한 삶을 탓해보기도 합니다. 번잡한 생활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며칠이라도 있으면 마음 속의 찌꺼기들이 다 사라지고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처럼 공허한 변명이 또 없습니다. 어디를 간들 번잡함이 없겠으며, 마음 속의 마물들이 여행길이라고 안 따라가겠습니까?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한 것이 여행이라면, 나를 찾아 떠나는 마음의 여행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구경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하기야 세상 구경도 결국 나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기도 하군요.) 말이야 쉽지만 어느날 갑자기 눈 감고 앉아 있는다고 될 일도 아니니 답답합니다만, 그렇다고 무작정 요란 떨고 삶의 고단함을 탓한들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살아가며 하나씩 형편껏 하는 것이란 얘기가 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굳이 하와이를, 아니 가는 김에 남극이나 티베트에 가야 여행이 아니라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잠시 전철 안에서 혹은 책상 앞에서 잠시 나를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아닐지요?

기업이나 정부의 일하는 현장을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경영자나 정책 담당자의 하루는 크고 작은 판단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인간 세상의 일이, 세상 일에서 사람의 힘이 대단한 것도 못되지만, 그나마 보통 힘든 것이 아니고, 조금만 잘못 되어도 민폐가 이만 저만이 아닌데 짧은 시간에 훌쩍 떠나본들 어디를 가겠습니까? 또 연락 다 끊고 사라지면 일이 되겠습니까? 어렵게만 생각할 것 없이 잠시라도 조금 더 깊고 넓게 근본을 생각하다 보면 조금씩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꼬인 일의 가닥도 조금은 보인다는 것이 일하는 분들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나를 찾아가는 여행, 생활 속의 작은 지혜가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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