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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주의 치유하는 죽음의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현세에 집착하는 과시적 삶이 탐욕 부추겨
명분적 도덕 대신 삶을 생각하는 교육 필요


한국의 정신문화를 한 단계 향상시키지 않으면, 세계가 부러워하는 그런 나라를 가꿀 수 없겠다. 한국인은 현세적 속물주의의 근성을 넘기 위한 문화를 익혀야 하겠다. 그 근성이 절대 빈곤국에서 세계 12대 무역강국으로 한국을 부상케 한 원동력이 되었지만, 그것이 다시 한국인의 정신적 향상을 방해하는 엄청난 장애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승의 거지 팔자가 저승의 정승 팔자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한국인의 무의식에 깊이 박혀있는 현세적 속물주의를 보게 한다.

한국인은 대개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무덤도 생가에서 가급적 멀리 둔다. 마을 근처에 묘지가 있는 서양이나 일본과 다르다.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인데도, 죽음의 생각을 자꾸 뒤로 미룬다. 단적으로 한국인은 너무 현세적이다.
현세적 삶은 필연적으로 과시적이고 소유지향적이며, 향락적이고 급한 성정을 만든다. 현세에서 남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자기가 가진 것들을 요란하게 과시한다. 돈과 학벌과 세력을 타인들에게 과시한다. 필요 이상의 고가 소비와 호화 혼수가 기승을 피우고, 실력보다 명문 학교 출신이 더 중요하다. 다 과시용이다. 거기에 끼면 흥이 나고, 못끼면 한을 느낀다. 흥이 나면 만사가 OK고, 한이 되면 몸을 비틀고 울부짖으면서 원한과 적대감을 안으로 품는다. ‘폼생 폼사’가 과시적 속물근성을 대변하는 말이겠다.

이런 생활습성에서 당위적 도덕을 설교 해도 그것이 마음 깊이 스며들지 않는다. 한국의 일반적 도덕교육은 너무 명분적 당위의 주장에 치우쳐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다. 그런 도덕교육은 별로 효과가 없다.

현세적 속물주의의 약은 죽음의 자각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뻔한 정보가 아니라, 죽음이 현재 나의 삶 안에 절박하게 웅크리고 있음을 자각함이다. 과시적 탐욕을 지울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은 곧 죽음의 무(無)다. 현세 속물주의를 넘어서는 마음은 나의 죽음을 통하여 소유의 허망함과 무상함을 깨닫는 것에서 온다. 명분적 도덕 대신에 죽음을 통하여 삶을 생각하는 교육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소유적 삶의 무상감은 적극적인 새 삶의 방식을 가르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현세적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고에서 이 생명을 우주적 시공의 기적(氣的) 존재방식으로 여유롭게 보는 사고로 생각이 달라진다. 이것이 존재론적 사유다. 이 용어를 대학의 강단철학 개념이라고 봐서는 안된다. 도덕적 사유보다 존재론적 사유가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향상시키는데 필수적인 것 같다. 죽음을 통하여 삶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꽃피우게 하는 것이 존재론적 사유의 힘이다.
만물의 자연적 존재방식은 다양한 물성에 따라 가장 아름답고 풍요하게 그것을 최대한 꽃피우고 열매나 씨를 보시하고 사라진다. 만물의 등장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퇴장의 과정을 밟는다. 꽃이 낙하하고 사람도 피안으로 사라진다. 이처럼 죽음은 만물과 인간을 장악하려는 소유의식의 거부를 상징한다. 죽음은 존재의 나타남이 다시 무(無)로 사라지는 은적을 뜻한다. 무에로의 은적은 이 우주적 생명의 기(氣)가 밤의 고요에로 침잠하여 낮보다 더 성숙하고 풍요하기를 기약하는 휴지(休止)일 수 있다. 죽음의 무는 허무가 아니다. 삶의 존재가 낮이라면, 죽음의 무는 밤이다. 밤에 깊은 사색에 젖듯이, 죽음이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깊이 있게 한다. 그래서 만물처럼 각자의 삶을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꽃피우고 이타행을 하면서 생명의 밤으로 되돌아갈 것을 존재론적 사유가 말한다. 이런 사유는 현세적 속물주의의 근성을 씻어낸다.

이 근성은 남의 떡이 커 보여 바깥에서 여의주를 빼앗아 소유하고 과시하려 하지만, 존재론적 사유는 자연 만물의 물성처럼 각인의 개성 속에 이미 여의주가 깃들어 있음을 알아채리게 한다. 그 여의주도 죽음을 통한 삶의 조명 속에서만 비친다. 속물은 남과 자기의 여의주를 비교하나, 존재론적 사유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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