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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교가 존재론적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존재는 연기법 따르는 생기 현상일 뿐
‘空’이해한 존재론이 미래적 사유 방식

불교가 존재론적인가? 전통적 불교철학에서 불교는 공(空)사상이므로 존재론적 사유와는 결을 달리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또 심지어 불교의 공사상은 중국불교가 말한 자성(自性)의 가르침과도 결을 달리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불교를 존재론이라 여기면, 아마도 그 말이 초기 불교인 설일체유부의 아공법유설을 연상시켜 이의를 제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불교를 존재론이라 부르는 이유는 존재를 고정된 불변의 명사로 보기 때문이 아니다. 명사로서의 만물이 자기 존재근거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런 사유가 아니다. 그런 사유를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서는 존재자학(存在者學)(ontic science)이라 부른다. 존재자학은 각 존재자가 자기의 고유한 성질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는 점에서 사실인즉 소유론이다. 존재론(ontology)은 그런 존재자학이 아니다. 존재는 사실상 공이다. 이것은 연기현상이 곧 공이라고 말한 용수(龍樹)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존재는 공을 근거로 하여 거기서 일어난 생기현상의 사건에 불과하다. 존재는 공에서 솟은 생멸 사건의 등장과 퇴장 사이다. 존재는 공의 바다에서 자동사적으로 생기한 인연의 거품이나 물결과 같아서 오가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존재는 다른 현상들과 인연으로 뒤섞인 잡종적 계기로서 생기고 사라지는 일시적인 가상의 흔적에 불과하다. 존재는 공생과 공멸의 그물망처럼 출렁거리는 의타기적인 사실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존재는 무진장한 공이 다양하게 나타낸 자신의 얼굴들이다. 공에 근거하지 않는 존재는 모두 존재자로 미끄러진다. 재래의 신학이나 인간학이나 자연학이 다 존재자학인 셈이다. 존재자학은 자기 고유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기에 다 소유론이다. 신학은 신적 자아를, 인간은 인간적 자아를, 자연학은 물적 고유성을 전제한다. 이들 학문은 다 자아학을 신조로 하여 자아가 세상을 소유하려는 그런 의도를 품고 있다. 신의 세상 소유에서 인간의 세상 소유로 서양 사상이 미끄러졌다. 이것이 중세에서 근대에로의 이행이다. 다 소유론과 자아학의 연장일 뿐이다. 존재자학은 세상을 소유하려 한다. 자아의 진리가 세상을 소유하려 한다. 진리를 생산하는 자아가 심리적 개아일 수 없기에, 서양사상은 보편적 자아의 개념을 생산했다. 그러나 그 보편적 자아의 개념은 말장난의 언어적 희롱에 불과하다.

불교를 공론(空論)이 아니고 존재론이라 명명하는 까닭은 모든 기존의 소유론적 존재자학의 사고방식을 초탈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공의 진리를 부처님이 연기법이라고 명명한 것과 유사하다. 존재론은 세상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각각 소유하려는 기술학과 도덕학을 다 넘어서기 위함이다. 존재론적 사유방식은 소유론적 사유방식에 대한 부정의 뜻이 담겨 있다. 그동안 인류는 동서를 막론하고 공과 무를 철학적으로 제대로 이해 못해서 소유론적 사고방식을 존재론으로 착각해 왔었다. 이제 인류는 마음에서 공을 닮으려는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익혀야 한다. 이것이 미래적 사유의 핵심이다.

그리고 공사상이 인도불교의 사유고, 자성이 중국불교의 사유라는 견해도 자제되어야 하겠다. 둘 다 존재론적 사유의 다른 표현이다. 본디 사상사는 불변의 진리를 늘 시대마다 새로운 은유법이나 환유법으로 바꾸기 마련이다. 불교사상사도 그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불교의 각 종파는 부처님의 진리를 각 시대에 알맞게 새로운 언어로 변용한 것이다. 창조는 언어의 가변적 변용이다. 그런 변용이 생기는 까닭은 불변의 본체가 늘 가변의 새 현상으로 젊어지기 바라기 때문이다. 혜능(慧能)이 말한 자성은 자아의 자기동일성이나 보편적 자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허공법계의 공성이 마음의 유식과 합일되었을 때에, 마음에서 생기하는 무한 환희심과 무한 자비심의 존재 현상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자성은 진공(眞空)이 저런 묘유(妙有)로 표현된 것이겠다. 공이 연기이듯, 공성이 자성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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