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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모순의 만남

기자명 법보신문

이종찬 칼럼

너 있어야 나 있음이 모순의 존재순리
역리를 순리로 되돌려야 지혜로운 삶


삶의 존재란 놓여진 실상 그 자체이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가 바로 지금의 삶의 실상이고, 이 실상의 존재는 항시 마주봄의 대칭에서 이루어진다.

존재의 1인칭인 나는 반드시 2인칭인 너가 있어 존재한다. 그러면서 이 관계는 각각 서로 마주 보아야지 앞뒤의 순서대로 서면 질서정연한 듯하지만 실은 각기 상관성을 잃은 개체들이지 공동의 존재는 못 된다.

이 공동의 존재인 마주 봄은 각각의 개체로서는 서로 부딪히는 거슬림의 역리이다. 순리가 되려면 앞과 뒤로 나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살이의 존재는 순리로 출발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역리로 출발된 것이다. 이러한 역리적 논리를 ‘모순(矛盾)’이라 하지만, 기실은 역리가 아닌 순리이다. 될 수 있으면 사물을 관통시키려는 예리함이 창(矛)의 존재이고, 될 수 있으면 사물의 관통을 막으려는 것이 방패(盾)의 존재로서 그 기능은 서로 정반대이지만, 상반되는 상대가 없으면 내 존재의 기능은 무의미하게 된다. 여기에서 모순이 존재의 거스림이 아니라 존재하게 되는 순리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실체이니, 이 모순인 실체를 활용함에 있어서 역리가 아닌 순리로 되돌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사람살이의 윤리적 실천은 바로 이 모순적 부딪힘에서 출발한다. 세상살이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이고,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울림의 시발이 바로 부부이다.

이 부부는 처음부터 동물적 암수의 짝맞춤으로 출발한다. 이 짝맞춤은 거스림이요 부딪힘이나, 거스림이 없이는 마주할 수가 없다. 분명히 모순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부딪힘으로만 마주하는 동물적 암수가 아닌, 인간 부부로서의 짝맞춤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모순이 모순이 아닌 진리의 자리로 되돌림이요. 이 되돌림의 질서 규정이 사람살이의 윤리이다.

사람살이의 질서 규정의 윤리나, 사람살이의 정신적 규범인 종교는 모두가 이 모순적 인간 삶을 모순이 아닌 진리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행위적 규범이기에, 그 가르침의 언어적 덕목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 목적은 같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좥삼가구감(三家龜鑑)좦을 남기셨다. 스님이면서 왜 유가와 도가까지 아우르는 세 집안의 교훈을 논의하는 것일까. 스님은 세 집안 가르침의 귀결점인 사람살이의 올바름에는 너와 나의 간격이 있을 수 없다 여겼던 것은 아닐까.

각 분야의 앞머리를 불러내는 용어를 ‘마음’으로 잡아온 것도 세 집안의 행위적 덕목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행위의 본체로서는 ‘마음’의 정의가 핵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가는 사회질서를 잡아가는 통치의 철학이 지도 이념이 되어 요순(堯舜)으로부터 내려오는 마음의 법(心法)이고, 도가는 공간적으로 한정할 수도 없고 시간적으로 다할 수도 없어 그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애써 마음(心)이라 했다. 불가도 이름으로 형상 지을 수 없으면서도 억지로 이름을 붙여 혹은 마음(心) 혹은 부처(佛) 혹은 중생(衆生)이라 했다.

결국 세 집안 각기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고민하는 것인데, 이 마음은 무엇과 마주서서 붙여진 이름일까. 사람으로 기준할 때는 육체인 몸과 대칭될 것이지만, 만물 생성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본성(性)과 형상(相)의 마주함일 것이다. 청허당도 이 마주섬의 대칭적 모순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으로 세 집안의 귀감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평소에 의아해 온 다음 글귀에 마음이 쓰인다.

‘만약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볼 수 있다(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함이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니다’의 부정이 아닌 ‘모든 모습과 모습이 아닌 것’을 아울러 보아야 여래를 본다는 양자 긍정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는 불교적 사유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모순을 모순이 아닌 화합의 장으로 되돌리는 진리에도 가깝기 때문이다. 여름벌레의 얼음 이야기 같아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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