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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묘향산 상원암

기자명 이학종

칠성각 금단청에 단청장 넋을 잃다

상원암 본전 기둥없는 11m 액방 눈길

축성전은 명성황후 비원을 전해주는 듯



상원암(上元庵·국보 제41호)은 모향산 상원암 계곡의 용연폭포, 산주폭포, 천신폭포가 떨어지는 인호대 맞은편으로 약 100미터쯤 떨어진 법왕봉 중턱의 절묘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호관폭을 배경으로 지어진 보현사의 산내암자로 본전과 칠성각, 산신각, 불유각(수각) 등으로 이뤄져 있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전 마루도리에 있는 상량문에 1580년에 중창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암자의 역사는 16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부터 묘향산의 으뜸가는 암자라고 하여 '향산제일암(香山第一庵)'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묘향산 중에서도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전은 정면 5칸(11.06미터), 측면 2칸(5,7미터)의 기본채에 동쪽 1칸, 서쪽 3칸을 덧붙여 앞에만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지지기둥이 없이 긴 액방으로만 연결시켰다. 따라서 툇마루에 올라서면 시야의 제한 없이 탁 틘 전면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5칸이나 되는 긴 길이를 기둥도 없이 액방으로만 지지할 수 있도록 하중을 분산한 조선기의 빼어난 건축술을 알게 한다. 상원암이란 현판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인데, 본래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상원암에 있던 현판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이 절 경내로 들어서자, 주지 백운 스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백운 스님은 보현사 주지 청운 스님의 사제벌이란다. 삭발을 했고 검은 두루마기에 홍가사를 두르고 있어 마치 남쪽의 스님을 만나는 느낌이다. 법당 참배를 마치고 툇마루로 나와 묘향산 전경을 바라보니 양사언의 시구대로 신선이 된 기분이다. 환하게 펼쳐진 전방의 광경에 뜨락에 서있는 천연기념물 500년생 적색 소나무와 염주나무, 은행나무 등이 어울려 그 자태를 한껏 뽐내니 원근의 사물이 이뤄내는 조화가 환상적이다.




안내원 김영숙 보살은 '상원암의 경치를 두고 옛 스님들은 금방천궁, 즉 극락세계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빼어난 경관이라며 양사언도 '신선굴택 운하동천'이라는 글귀를 쓸 때 차마 아름다운 경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발가락에 붓을 끼어 썼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라며 뿌듯한 표정을 한 채 자랑에 여념이 없다. 상원암에 도착하면서 김영숙 보살은 우리 일행에게 시 한편을 낭송해 드리겠다고 자청한다. 낭랑한 목청으로 읊은 시구의 내용은 이렇다.



'아마도 수수천년은 흘러 왔으리/ 호랑이도 말을 했다는 그 시절/ 인호대 절경을 저 혼자 볼 수 없어/ 길 가던 나그네를 청했다는 전설// 아마도 수수만년은 전해왔으리/ 비로봉이 생기고 만폭동이 생기고/ 수려한 밀림이 여기 설레는 것은// 물어보자 묘향산아 긴긴 그 세월/ 너의 아름다움을 즐긴 이 몇몇이더냐'



본전 옆의 칠성각은 하나의 긴 나무를 잘라 만든 건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화려한 금단청의 품격을 갖춘 건물이다. 칠성각의 자리에 있던 노목 한그루를 잘라 네 토막을 내어 기둥을 만들고 그 가지로 서까래를 썼다는 것인데, 전설을 입증이나 하듯이 건물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갈수록 기둥과 서까래의 굵기가 가늘어진다. 기둥 위에 외5포 내9포의 화려한 두공을 짜 올리고 겹처마 합각지붕을 이었다. 건물 안에는 대들보 없이 천정을 형성했다. 화려한 금단청과 간추벽의 그림이 가히 탄성을 자아낼 만 한 데, 그 장면 장면들이 마치 묘향산의 자연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단청기술자 김성룡 거사는 '어떤 스님 단청장이 불보살님께 바칠 평생의 작품을 남기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그야말로 맘먹고 그린 수작 중의 수작'이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본전의 불상은 가금으로 되어 있어 개금불사가 시급하고 칠성각에는 옛 단청의 진수가 온전히 남아 있어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데 우리 일행과 조선불교도연맹 관계자의 견해가 일치한다.

칠성각 옆으로, 용연폭포의 용소(龍沼)에 살던 용이 하늘로 승천하다가 그만 뿔이 떨어져 굳어진 바위라는 기묘한 모양의 용각석(龍角石)을 지나 10여 미터쯤 더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는 축성전은 8천냥의 왕실자금으로 10개월 만에 지어진 건물이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축성전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명성황후(민비)가 세자를 낳은 후 이 절을 짓고 세자의 장수를 빌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본채 좌우에 한 칸씩의 나래채를 붙인 겹처마의 합각집이다. 그래서 양식은 사찰이라기보다는 살림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축성전에서 이채를 띠는 것은 벽체의 그림인데 건물 바깥벽과 천정들에는 산수화, 무악도, 불화, 생활세태도, 성좌도 등의 이채롭다. 기본채의 앞쪽 툇마루에는 상원암 본전과 같이 별도의 기둥을 세우지 않고 긴 액방을 가로질러 앞을 시원하게 틔어 놓으면서 기둥 위치에는 포를 설치하였다. 기본채의 현판은 축성전으로, 좌우 별채에 백련사(白蓮寺)와 우당(愚堂)이라는 쓴 현액이 나란히 걸려있는데 글씨가 보통의 수준을 넘는 명필이다. 축성전 안내판에는 '1875년에 세운 유적건물로 살림집 모양의 형식을 띠었으며 건물 안팎의 벽체에 당대의 생활을 반영한 여러 가지 내용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역사연구적 가치가 있는 건축유산이다'라고 쓰여 있다.

상원암=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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