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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하나의 바리때Ⅰ

기자명 법보신문

괴상한 생김새에 포대를 둘러메고…

절강성 명주(明州)의 봉화현(奉化縣) 출신인 포대(布袋) 스님은 속성이 무엇인지 전해지는 바 없고, 계차(契此)라는 이름도 ‘스스로 그렇게 일컬은’ 것으로 돼 있는 점으로 보거나, 그 관례에서 벗어난 글자의 구성으로 미루거나 자작의 법명일 개연성마저 없지 않다. 그리고 ‘작은 몸에 살이 찌고 좁은 이마에 배가 불룩한’ 생김새부터 괴상한데다가, 항상 포대를 둘러메고 저자나 마을에 나타나 무엇이건 달라고 해선 그 속에 넣음으로서 얻은 것이 포대라는 이름인 것이었다. 이런 인물이고보니 갖가지 일화가 따를 것은 뻔하나, 그의 진면목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가 남긴 한 수의 게송을 오래 동안 가슴에 담아 왔다.



하나의 바리때에 즈믄 집 밥을 얻어

홀로 노니는 만리의 천지.

그러나 반기는 이 흔하지 않아

길도 구름에 물어 가노니…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目睹人少 問路白雲頭



○ 靑目. 靑眼이라고도 한다. 죽림칠현의 하나인 완적(阮籍)은 속물이 찾아오면 백안(白眼)으로 대하고, 마음에 드는 방문객일 때는 청안으로 맞아들였다는 고사에서 생긴 말. 검정소를 靑牛라 하듯 靑은 흑색을 아치 있게 나타낼 때에 쓰이는 수가 있다. 백안이 노려 봄으로써 흰자위가 드러나는 데서 생긴 말이라면, 청안(청목)은 검은 눈동자가 제 자리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반갑게 객을 맞는 비유. ○ 少. 드문 것. ○ 白雲頭. 頭는 뜻없는 조자.



별것 아닌 듯 하면서도 의외로 미묘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게송이다. 전반부의 구조만 해도 그렇다. 기구(첫 줄)에서는 ‘하나의 바리때(一鉢)’와 ‘즈믄 집의 밥(千家飯)’이라는 말이 대응하고, 승구(둘째 줄)에서는 ‘홀로(孤身)’와 ‘만리에서의 노님(萬里遊)’이 대응하고 있다. 소위 구중대(句中對)라는 것이어서, 게송의 이 부분에 수반되는 함축과 여운은 이런 대구법(對句法)에서 온다.

그렇다고 구(句) 자체 안에서의 대응만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구와 구 사이에서도 그것은 발견된다. 기구의 ‘하나의 바리때’와 승구의 ‘홀로’, 전자의 ‘즈믄 집의 밥’과 승구의 ‘만리에서의 노님’이 그것인 바, 앞의 구중대에 비해 조금 이상한 데가 있다. 앞의 것이 다(多)와 소(小)·대(大)와 소(小) 따위 극과 극의 뚜렸한 대응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것은 ‘하나의 바리때’와 ‘홀로’라는 말의 대비에서 느껴지듯 비슷한 것 끼리의 대응이다. 소위 동류대(同類對)에 해당하려니와, 지금 우리에게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두 구는 보완해 주는 기능을 각각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기구에서 미진했던 것을 승구를 통해 이해한다든가, 승구를 이해함에 기구를 활용한다든가 하는 편의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이 부분의 구조적 특성에 관해 장황한 말을 늘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 이같은 구조적 특성을 전제로 깔고, 게송의 기구가 보여 주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이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율을 받들어, 탁발에 의해 살아가는 출가자의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점심 때가 가까워오면 바릿대를 들고 시가지나 마을에 들어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일곱 집에 들러 먹다 남은 밥을 조금씩 얻어가지고 도량으로 돌아와, 정오가 지나기 전에 먹는다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식사법이, 그대로 중국의 상황인 것은 아니다. 나라가 다른 탓도 있겠지만 절마다 사유재산을 지니고 있었고, 큰 사찰인 경우에는 장원(莊園)이라 일컬어, 많은 토지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중국불교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식사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던 탁발도, 식량이 바닥났을 때나 여행 중인 승려의 마지못한 일시적 구급책 쯤으로 그 뜻이 별질된 것은 불가피했을 터이다. 그런데 이같은 불교계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포대화상 한 사람만은 하나의 바리때에 의존해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할 때, 그런 결단을 가능하게 한 마음의 경지는 어떤 것이었는지, 그가 남긴 게송을 통해 찬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계속)



〈시인·불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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