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보조지눌의 『계초심학인문』 중에서
⑩ 보조지눌의 『계초심학인문』 중에서
  • 법보신문
  • 승인 2005.07.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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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들었더라도 ‘불빛’이면 따르라
스승께서 자리에 올라 법을 설하게 되면 법에 있어 아득히 여기는 생각을 지음으로써 물러서고자 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다거나 혹은 매번 들은 것이라 여기는 생각을 지음으로써 쉽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일은 결단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응당 모름지기 비워놓은 마음으로 그것을 들으면 반드시 깨달음의 인연이 있을 것이니, 말이나 배우는 자들을 따라서 단지 입으로 분별하는 것을 취하지는 말아야 한다. 소위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이 되며, 지혜로운 자의 배움은 깨달음[菩提]을 이루고 어리석은 자의 배움은 생사를 이룬다.’ 하였으니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또한 법을 주재하는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 그로 인하여 도에 장애가 있으면 능히 나아가 수행하지 못할 것이므로 결단코 이를 삼가야 할 것이다.

『논』에 이르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밤에 길을 가는데 죄인이 횃불을 들고 길에 나옴에 만약 그 사람이 밉다하여 불빛을 받지 않는다면 구덩이에 빠져 떨어져 버릴 것이다’ 하였으니, 법을 들을 때에는 마치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여 반드시 귀와 눈을 기울여 현묘한 법음을 듣고 본성의 티끌을 깨끗이 하여 그윽한 이치를 맛봐야 한다. 거처에 돌아온 후에는 조용히 앉아 그것을 직관하되 만일 의심나는 바가 있으면 먼저 깨우친 이들에게 널리 물어서 저녁때까지 삼가 생각하고 아침에 다시 물어 실 한 올이나 머리털 하나라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아야 바른 믿음을 낼 수 있으며 도를 가슴에 품은 자가 아니겠는가. 비롯함이 없이 익혀온 애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은 의지의 바탕에 솜 얽히듯 하여 잠시 숨어들었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마치 하루거리 학질과도 같이 하나니, 일체의 시간 중에 곧장 수행을 도울 수 있는 방편과 지혜의 힘을 사용하여 간절히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것인데, 어찌 한가하고 게을리 근거 없는 얘기로 노닥거리며 아까운 나날을 헛되이 보내고도 마음의 종지(宗旨)를 바랄 수 있는가.

단지 의지와 절개를 굳건히 하여 그릇되고 게으른 것은 몸소 책망하고 옳지 않은 것을 깨달아 착한 것으로 옮겨가며 조심스레 후회되는 바를 고쳐 가야 한다. 부지런히 수행하면 곧바로 바라보는 힘을 점차 깊어지게 될 것이며, 단련하고 또 연마하면 행하는 문이 점차 깨끗해 질 것이다.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길게 일으키면 도업(道業)이 항상 새롭게 느껴질 것이고, 경사스럽고 행복하다는 마음을 항상 품으면 끝까지 물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래도록 하면 자연히 정혜(定慧)가 원만하게 밝아져 스스로의 심성을 보게 될 것이며, 실재하지 않는 자비와 지혜를 이용하여 중생들을 제도함으로써 사람과 하늘 가운데 커다란 복밭(福田)을 일구게 되는 것이니, 오로지 이에 힘 쓸 것이로다.


보조지눌은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은 1165년 출가해 승과에 급제했으나 출세를 단념하고 평양 보제사의 담선법회에 참여했다. 혜능선사의 『육조단경』을 읽고 대각한 뒤에도 수도에 더욱 정진했다. 이후 정혜사를 조직하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 불교 쇄신운동에 눈떴다. 1200년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가 존재할 수 없다고 설파, 선과 교의 합일점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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