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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가장 현실적인 세상의 도

기자명 법보신문
이성적 가치판단은 언제나 양면 지녀
무아의 길만이 평안 부르는 ‘안심법’


3조 승찬(僧璨)대사의 가르침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을 꺼릴 뿐이다… 틀림(違)과 바름(順)이 서로 다툼은 마음의 병이 됨이니…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사람들은 이것이 현실의 도가 아니고, 출세간의 도라고 여긴다. 현실의 도는 선악과 시비를 따져 올바른 판단을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여긴다. 선악과 시비 판단이 없으면, 사회생활이 뒤죽박죽이 되어 정의의 기준이 사라진 혼란이 도래할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불교의 가르침은 현실적이 아니라고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저 승찬대사의 가르침이 가장 현실적인 세상의 도를 말한 법문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그동안 인류의 사회생활과 역사는 시비와 선악과 득실의 다툼으로 날이 새었고 날이 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인간의 의식이 판단하는 모든 이성적 가치는 늘 이중적인 야누스의 얼굴을 갖는다. 선의 빛은 독선과 위선의 어둠을 뒤로 숨기고 있고, 이성적 진리의지는 비이성적 무의식의 욕망을 억압하는 권력의지를 정당화하고, 편리의 기능은 비기능적 존재의 성숙을 우습게 여긴다. 또 순수에의 애정은 불순을 증오하는 독기를 품고 있다. 약과 독이 같은 존재양식의 이중성임을 모르고 별개로 분리된 실체인 양 이원적으로 생각하려는 사고방식이 인류를 오래동안 지배해 왔다. 세상을 정사(正邪)로 판단하기를 고집하는 자는 세상이 그렇게 환원되어진다고 착각한다. 그 고집이 마침내 정의의 투쟁으로 미화되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우긴다. 이성적 판단론은 두가지의 착각을 범하고 있다. 하나는 자기의 주장이 빛만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어둠을 잉태하고 있음을 모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주장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자기 주장의 이면인 그 어둠을 보고 있기에 반대의견을 개진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 각자는 자기 주장의 옳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강력한 소유의지를 발동하려 한다. 이것의 극치가 전쟁이다.

이성과 의식이 판단의 주체로 군림하는 한에서 세상에 평화없다. 왜냐하면 그 주체는 늘 자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인식판단은 운명적으로 부분적이고, 자아의 도덕판단도 운명적으로 편파적이다. 자아의 판단은 시비를 가리는 논리 이전에 이미 호오를 분별하는 심리의 산물이다. 시비의 논리는 호오의 심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무기에 다름 아니다. 세상에 유식한 논리들이 범람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다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호오의 심리를 띤 아중심주의의 변용에 불과한 것이겠다. 서양사상은 이 아중심주의를 호도하기 위하여 보편적 자아론을 전개했으나, 그것은 어떤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서양은 신을 보편적 자아의 자리에 두기도 하였지만, 신의 호오가 종교전쟁을 초래한다. 자아가 있는 한에서 세상에 영일이 없다. 우리는 무아의 길을 배워야 한다. 무아의 길만이 세상을 평안케 하는 안심법(安心法)이다.

그러면 사회에 실존하는 악과 불의를 불교는 방임하자는 것인가? 악과 불의를 청소하겠다는 정의의 화신들이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을 깨끗이 인간사회와 역사에서 구축한 적이 있었던가? 투쟁의 강도가 강렬할수록 그들 스스로가 무거운 신악의 대명사로 둔갑하지 않았던가?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술주의와 도덕주의적 구원론의 허상을 알아차렸다. 세상을 의식의 주장대로 뜯어 고치려 하는 헛수고 대신에 세상을 보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을 익히는 것이 가장 쉬운 안심법문의 길이겠다. 이것이 승찬대사가 가르쳐 준 길이리라. 악과 싸우는 자도 새로운 악이 된다. 선을 생각하면 반드시 악이 거기에 또 끼어 든다. 그래서 선이 악을 지우려 하지 말고 악을 진정시켜 악이 흥분하지 않도록 한다. 선을 강하게 의식하면 악도 그만큼 미쳐 날뛴다. 그래서 불교는 선악의 대결보다 무선무악을 더 고급스런 현실적 세상 구원의 비전으로 여긴다. 현실의 구원은 마음을 고요히 쉬는 데서 온다. 이것을 세상은 그간 너무 몰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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