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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이름과 몫

기자명 법보신문
사물 이름엔 존재의 이유 담겨 있어
이름이 바로서야 바른 행위도 가능


우주 공간에 무한으로 존재하는 물체에는 각기 그 이름이 있다. 만약 이름이 없다면 그 물체의 실상을 나타낼 수가 없다. 그러기에 “하늘은 이름 없는 물건을 생산하는 일이 없고, 사람은 제 먹이를 타고 나지 않은 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사물 존재는 그 자체가 이름인 셈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름과 사물은 매우 중요한 상관성을 유지한다. 사물이 있는 그 자체가 존재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뒤따르지 않으면 존재의 의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살이의 질서를 중히 여기는 유가에서 ‘이름을 바르게 해야한다(正名)’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바로 이름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행위가 바르게 이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선생님보고 “지금 위나라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은 무엇을 우선적으로 하시겠습니까” 하고 여쭈니, 공자께서 “꼭 이름부터 바르게 하리라” 하였다. 자로가 듣기로는 하도 황당하여 “선생님 어쩌면 그리 주제와 멉니까” 하니, “어지간히도 너는 모르는구나.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에 순리가 없고 말에 순리가 없으면 사물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질서가 없고 질서가 없으면 형벌이 공평하지 못하여 백성이 움직일 수가 없다” 하였다.

이름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사물이 존재하여 거기에 상응하는 이름이 주어지면 그 이름에 걸 맞는 몫이 뒤따른다. 곧 모든 사물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으니 이 존재하여할 이유가 바로 그 사물의 제몫이다. 물그릇은 그 이름이 바로 물그릇이고 물을 담는 것이 제몫이다. 사람살이 모든 것이 이 제 이름을 갖는 것이요, 그 이름에 맞는 제몫이 있다. 태어나면서 붙여진 이름이 자식이라 하면 그 이름의 몫은 자식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상대방인 어버이를 바르게 대하는 것이 바로 자식의 몫이다. 사람살이의 질서적 연결의 첫 단추는 부부이다. 이 부부가 있어 가족 사회 국가의 윤리적 질서가 성립되는데, 이 때 남편 아내의 이름은 상대방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요, 그 행위의 몫도 바로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니, 남편이란 이름의 몫은 아내를 감싸주는 것이요 아내의 몫은 남편을 따라 주는 것이다.

내가 갖은 이름은 그 몫인 실행의 덕목이니,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자가 말했던 ‘이름이 바로 서야 질서가 선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기실 이름은 존재의 허깨비이고 그 이름의 몫이 존재의 알맹이이다. 알맹이가 있는 삶을 살려면 이 몫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존재의 이름은 수시로 변한다. 집에 있으면 아들딸이 이름이니 그 몫은 어버이를 위하는 것이요, 밖으로 나가면 이웃이요 벗이니 그 몫은 사랑이요 믿음이다. 직장에 가면 구성된 이름에 맞는 몫이 기다리고 있다. 이 때 우리는 자리 값이라고도 한다. 사원의 몫은 회사를 위함이 몫이요 사장은 사원을 사랑하는 것이 주어진 몫이다. 이름의 몫을 명분(名分)이라 하고 직업인의 몫을 직분(職分)이라 한다. 지금 우리는 이 명분과 직분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에서 보았던 공자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 것은 아닌가.

불가에서도 이 이름은 허깨비(虛像)라 여기고 그 이름이 갖는 실상이 알맹이(實像)라 한다. 이런 생각의 발전이 말도 버리고 생각마저도 끊으라는 백척의 장대 머리로 내몰아가는 것이다. 입을 열면 바로 어긋난다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나, 말을 하면 말의 길이 끊긴다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 겉으로는 논리에 어긋나는 표현 같지만 바로 이것이 진리이다. 이것이 진리임을 깨닫기 위하여 백척의 장대 머리에서 한 발작 내딛는 깨우침으로 내모는 것이요 이 깨우침을 얻으려는 용맹정진이 제 몫을 바로 알려는 바른 삶인 것이다. 이 때 허깨비로 여겼던 이름이 실체를 찾은 알맹이의 이름으로 되살아나서 이름과 실체가 하나인 바른 나가 될 것이다. 이것이 종교이던 윤리적 교육이던 궁극적으로 바라는 평화요 낙원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부처와 중생의 거리가 없는 하나의 경지가 아닌가.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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