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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의 수호자, 장보고

기자명 법보신문
윤 명 철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우리네 승려들은 옛날부터 바다를 건너다녔다. 고구려의 혜자나 담징은 망망대해의 동해를 항해하여 일본열도에 법의 씨앗들을 뿌렸다. 백제의 겸익은 뱃길로 인도를 갔다. 신라나 가야의 승려들도 마찬가지로 뱃길로 법을 구하러 다녔다. 이러한 인연들이 모여모여 통일신라시대에는 정말 많은 승려들이 바다를 항해하였다. 이때 당나라와 일본을 오고가는 승려들을 보살피고, 태워다주고, 또 함께 불법을 널리 편 사람이 장보고다.

장보고는 790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며, 어릴 때의 이름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 하였고 나중에 한자로 장고고(張保皐)라 하였는데, 활을 잘 쏘았던 것 같다. 아졸(牙卒)로 시작한 그는 공을 세워 30세 무렵에는 서주의 무령군(武寧軍)의 군중소장이 되었다. 매우 진취적이었던 그는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협력과 경쟁을 하는 열전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흥덕왕에게 신라인을 노비로 잡는 해적을 근절하겠다고 말하면서 828년에 군사 1만 명과 함께 고향인 청해진에 본거지를 차리고, ‘청해진 대사’가 되었다. 그는 청해진을 중핵(hub)으로 삼아 다양한 정책을 구사하여 우리역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바다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우선 국제적인 인맥을 활용하여 물류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재당신라인’들은 당나라에 거주하면서 운수업, 항해업, 제염업, 숯 굽는 일 등 환금성이 강한 일들을 하면서 물류의 길목에 신라방, 신라소, 신라촌 등의 정착촌을 건설했다. 한편 본국 신라인들은 일본무역을 거의 독점하였고, 서역이나 아라비아에서 오는 물품들도 중계무역을 하고 있었다. 또한 신라무역의 중요한 대상국인 일본에는 역시 재일신라인들이 거주하면서 무역과 해양에 종사하고 있었다. 장보고는 이들 범(凡)신라인들을 하나로 조직화시켜 물류의 끊어진 고리를 잇고, 신라 당나라 일본이라는 세 개의 시장을 하나의 체계 속에 편입시켰다.

그는 대당매물사를 당나라에 파견하여 구수(페르시아산 담요), 자단(자바 등지의 항목), 침향(수마트라산 향료)등 동남아시아와 아라비아에서 나는 사치품을 수입하여 신라 귀족들에게 팔았다. 물론 신라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을 당나라에 수출했다. 그런가 하면 선단을 거느리고 일본을 직접 방문, 현재 규슈 후쿠오카에 지점을 설치하고 사무역은 물론 공무역까지도 시도했다. 다음 단계로 이러한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하여 해양활동능력을 강화시켰다. 신라배는 성능이 우수하였으므로 승려나 상인들은 물론 사신들도 타고 당나라에 가곤 했다. 항해술이 발달하여 산동반도와 한반도 중부를 잇는 황해중부횡단항로, 절강성의 영파 앞바다를 출항하여 청해진에 닿았거나 혹은 일본열도로 직접 항해하는 동중국해 사단항로 등을 장악했다.

그러나 장보고는 상인이나 혹은 정치인에 머무른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세계를 꿈꾸고 실현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신앙이 중요했다. 산동반도의 적산에 법화원을 세우고, 청해진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열도의 큐슈에도 사찰을 지어 범신라인들 간의 정신적인 유대 관계를 강화하였다. 또한 불교를 통해서 상업과 무역행위의 명분을 쌓는 한편 소외된 백성들의 심리적인 불안감도 해소시켰다. 일본불교에서는 천태종이 발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원인은 당나라에서 9년 6개월간을 머무르다가 장보고 선단의 배로 귀국하여 일본 천태종의 증흥조가 되었다.

장보고는 단순한 상인이나 군인이 아니었다. 국제질서의 변화과정과 해양이라는 시스템을 활용하여 자기가 꿈꾸었던 이상세계를 건설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장보고가 역사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숱한 승려들이 배를 타고 중국을 넘나들면서 바다와 깊은 인연을 맺었고, 나중에는 우리 불교와 선종을 성립하는데도 영향을 끼쳤다.

폭풍이 몰아치고, 배가 난파하기 직전에 놓인 아비규환 속에서 ‘명선일체(命禪一體)’를 체득한 그들의 마음은 늘 백성들을 향했으리라. 장보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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