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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로 인도불교 부흥 견인

기자명 법보신문

인도 아나가리카 문인드라 바루아

1960년대 말부터 인도를 여행하던 서양인들에게 명상수행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던 재가 스승들이 몇 분 있다. 본지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S. N. 고엥까-지는 1969년부터 서부 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편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는 미얀마에서 9년간 수행과 교리를 공부하고 돌아온 아나가리카 문인드라 바루아 법사(Achariya Anagarika Munindra Barua, 1914~2003)였다. 이 분을 사람들은 문인드라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문인드라-지라고 불렀다. 문인드라 지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출신이었다.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은 12세기 이후 이슬람의 침탈로 인도불교가 모습을 감춘 후부터 현재까지 인도불교의 명맥이 이어져온 곳이었다. 문인드라 지는 인도불교의 전통을 이어온 바루아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1940년대 부처님의 초전법륜의 땅인 사르나트의 마하보디회에서 일하면서 인도를 여행하였고, 1950년대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보드가야(붓다가야)에 있는 마하보디회 사원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미얀마에서 수행-교학 공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성지에 세워진 절의 책임자로 재직하던 초기시절,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수행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50년대 중반 부처님 열반 250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에서 성대하게 치러지게 되었고, 미얀마의 마하시 스님(1904~1982)은 스리랑카나 태국 등의 상좌불교 국가의 요청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 마하시 스님으로부터 수행을 위한 초청을 받은 문인드라 지는 직접 수행을 하기 위해서 1957년 미얀마의 마하시센터로 가서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였다. 수행을 시작한지 처음 3개월만에 그는 많은 향상을 이루었고, 그 후 9년간 미얀마에 머물면서 수행과 교학을 공부하게 된다. 문인드라 지는 출가한 승려는 아니었지만, 출가자와 유사한 신분인 아나가리카(집을 떠난 사람)의 신분으로 펑생 독신으로 살았다. 마하시 센터에서 지내면서 그는 친척인 디파 마(Dipa Ma 1911~1989)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1957년 시작된 문인드라 지의 미얀마 생활은 1966년까지 이어졌고, 마하시 센터를 중심으로 수행과 팔리 아비담마교학을 익혔다. 당시 양곤에 살면서 스승 우 바 킨의 지도아래 수행하고 있던 고엥까 지는 인도인인 문인드라 지를 위해서 마하시센터를 방문하거나 집으로 초대해서 인도음식을 보시하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마하시 센터에서 맺었던 고엥까 지와의 인연은 인도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인도에서 현지인-미국인 지도

1966년 미얀마를 떠나 인도의 보드 가야도 돌아온 문인드라 지는 당시 위빠사나 수행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인도 땅에서 인도인은 물론 서양인들을 위해서 수행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1967년 56세의 문인드라 지를 만나 최초의 서양인 제자가 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미국의 위빠사나 수행지도자 조셉 골드스틴(Joseph Goldstein)이었다. 문인드라 지는 인도의 구루(스승)들이 지닌 깊은 평온과 강한 카리스마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편안함에 사람들은 매료되었다고 한다. 문인드라 지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생을 살아가거나 수행을 하면서 경험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항상 단순하고 편안하게(Be simple and easy) 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하다는 말이 모든 일을 쉽게 처리하라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몇 사람의 제자와 함께 보드 가야의 시장에 가서 이 가게 저 가게를 다니면서 얼마 안 되는 땅콩 값을 깎으려 하였다. 그 때 제자들이 “몇 푼 안되는 땅콩 값을 깎으려고 왜 그렇게 애쓰십니까?”라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단순하고 편하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하였다. 그 때 문인드라 지는 단순해질 필요는 있어도 멍청해질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문인드라 지는 다른 수행전통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마하시 스님의 지도를 받아 좋은 성과를 이룬 후에 미얀마 전역을 여행하면서 25명의 다른 스승들을 만나 배웠는데, 모두 다른 방식의 위빠사나 수행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수행의 방법을 접하면서 전혀 갈등을 느끼지 않았다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했다. 이러한 열린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의 비파벌주의적인 태도는 현대 사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이러한 태도를 잘 받아들인 지역은 바로 서양 특히 미국이었다. 여러 불교전통의 수행이나 교학이 갈등 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가르쳐지고 실천되고 있는 곳이 서양이며 미국이다.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권에 유입되기 시작한 동양의 종교 불교는 서양인에게는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선불교, 티베트 불교, 상좌불교 전통은 서양이라는 토양에서 그들의 삶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되어 가고 있다.

미국 IMS창립에도 큰 기여

문인드라 지의 제자이며, 디파 마의 제자이기도 한 조셉 골드스틴과 새론 살스버그(Sharon Salzberg) 등에 의해 1975년 미국 동부에 세워진 통찰수행협회(Insight Meditation Society, IMS: 『불교와 문화』2005년 7·8월호 참고)는 마하시 수행법을 근간에 두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실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을 가지게 된 데는 문인드라 지와 같은 스승의 영향도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MS는 미국 위빠사나 수행의 산실이 되어, 이곳을 중심으로 30년간 위빠사나 수행은 미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문인드라 지는 호기심 많은 분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에 미국으로 초청되어 IMS를 위시로 해서 여러 곳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였다. 한 번은 스미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을 견학하게 되었다. 문인드라 지는 모든 전시물들의 설명문을 읽으면서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였다. 같이 간 제자들은 지쳐서 꼼짝 못하게 되었지만, 활기에 찬 문인드라 지는 항상 깨어서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이 되었다고 조셉은 회고하고 있다.

2003년 10월14일, 인도 캘커타에서 문인드라 지는 90세의 생애를 평온하게 마감하였다. 운명하기 하루 전 조카에게 내일 자신의 삶은 끝이 날 것이며 완전히 치료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인도의 불교도로 태어나, 출가자에 가까운 재가자로 한 평생을 살면서, 단순하고 편안한 삶의 방식을 수행을 통해 터득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전한 문인드라 지의 삶과 가르침은 현재 서양의 수행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김재성(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강사)
metta4u@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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