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③ 검거나 희거나

기자명 법보신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울림이 중도
기준만 묵수하면 ‘고집’으로 변질


모든 사물의 존재는 있는 그대로가 진실인 것이다. 불가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성의 청정한 마음이나 불성이나 법신을 진여라 함도 결국 이 존재의 상도를 이름이다. “진은 진실의 뜻이고 여는 상도와 같은 여상(如常)의 뜻”이라 함이 바로 이 있는 존재의 실상 그대로임이 아닌가. 곧 사물 본성의 존재 그대로라는 의미이다.

검은 것은 검은 것이 진실이고 흰 것은 흰 것이 진실이다. 검은 것은 희어질 수 없는 것이요 흰 것은 검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아울러 검거나 희거나한 상대가 있어 서로의 흑백은 존재하는 것이다. 요즘 계층간의 갈등으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논리적 싸움을 흔히 ‘흑백논리’의 마주섬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극히 잘못된 시각이다. 논리의 기본은 바로 흑과 백이다. 검고 흰 두 사물이 없으면 따져보아야 할 실머리 자체의 성립도 없게 된다. 곧 흑백논리란 논리의 기본이다. 논리적 따짐의 목적은 대립된 이 두 사물을 인정하면서 두 사물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 또 오해의 소지가 있다. 검은 것과 흰 것이 어울린 중간색이 잿빛인 회색이다. 그래서 검은 것도 흰 것도 아닌 주견이 없는 기회주의자를 회색분자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기회주의란 원래가 희다 검다의 분명한 주견이 없이 희었다 검었다 하는 것이지 분명한 잿빛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검고 흰 것을 서로 양보하여 중간색으로 화합을 이룬 논리적 색깔이라면 오히려 회색이 바람직한 색깔이다.

어울림의 조화를 ‘간이 맞는다’는 비유적 언어로 대치할 수가 있다. 이 때 간이란 음식이 입에 맞는 맛을 말하는 것이다. 고유의 맛에는 다섯 가지의 기본이 있다. 시다 짜자 맵다 달다 쓰다는 다섯 맛을 오미(五味, 酸 鹹 辛 甘 苦)라 하는데, 음식은 이 오미가 적당히 어우러져 맛을 내는 것이고 입에 맞는 적당한 맛을 간이 맞았다 하는 것이다. 오미의 원래의 맛으로 따지면 제 맛을 잃은 것일지 모르지만 음식으로는 바로 참맛이다. 그러나 오미의 원 맛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음식의 맛 안에 어우러져 있는 참맛인 것이다. 오미는 그대로 오미이다. 간이란 ‘사이’란 뜻이다 바로 간(間)인 것이다.

사람살이는 바로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에 맛는 이 간을 맞추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 맛의 시고 짬이 분명해야 한다. 이 다섯 맛이 어울려 사람살이의 맛을 내는 것이다. 남편은 포용의 어울림이 원 맛이고, 아내는 따라감의 어울림이 원 맛이다. 이 두 맛이 어울리되 원 맛을 잃지 않도록 평생을 같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서로의 맛이다. 그래서 부부의 맛을 구별(別)이라 한 것이다. 자식의 원 맛은 효도이고 어버이의 원 맛은 사랑이다. 이 두 맛이 어우러진 간맞는 맛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운(親) 맛이다. 우애하는 것이 형의 맛이요 공손한 것이 아우의 맛이다 이 맛이 어우러진 간 맞는 맛이 질서(序)이다. 직장과 사회에서 간에 맞는 맛은 바로 이 형 아우의 맛인 질서인 것이다.

윤리적 실천의 덕목이나 종교적 믿음 사유의 덕목에서 힘주어 주장하는 중도의 요리는 바로 이 간 맞춤의 실현인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 본체의 존재를 확실히 이해한 뒤에, 이 실체들의 존재의 어울림에 맞는 덕목에 주목하게 된다. 이 때 바로 간에 맞는 중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어울림의 중도이지 중도를 정해 놓고 어울림을 찾는 것이 아니다. 중도부터 정한 중도를 지키려는 것을 고집이라 한다. 사람살이는 이 고집을 버리고 어울림의 중도를 찾는 것이다.

하나의 선에는 끝이 둘이다. 이쪽이 시작이면 저쪽이 끝이고, 저쪽이 시작이면 이쪽이 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쪽 저쪽을 꽉 잡고서는 시작과 끝을 고집한다. 끝이란 언어적 의미도 종말의 끝(end)으로만 이해하지, 발단의 끝(端 끝단)으로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끝이 둘이나 이 두 끝에 얽매이면 저쪽은 끝내 보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두 끝에 떨어지지 말라(不落兩邊) 했나. 검은 것은 검은 것이고 흰 것은 희 것이다. 고집은 말자.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