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④ 허공과 충만

기자명 법보신문
우물 파기도 돌려 생각하면 허공 메우기
선가의 언어 부정은 편협에 대한 경계


삼라만상의 존재란 있는 그대로의 것이기에 더함이나 덜함이 없다. 마치 고무 풍선의 이 쪽이 줄면 저 쪽이 느는 것과 같다. 그러고 보면 비었다라는 의미의 허공은 없는 것이다. 비어 있음으로 보이는 공간은 기실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어 줄어들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으로 보이는 것이지, 참으로 비어 있다면 빈 곳만큼 쭈그러져 있어 빈 공간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허공이란 무엇인가로 충만된 공간을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허공이 크면 클수록 더더욱 채워진 충만은 큰 셈이다.

대지를 뒤덮고 있는 빈 공간을 우리는 허공이라 하고 이 허공을 비어 있음의 극한으로 말하나, 기실은 이 허공은 공기로 꽉 차 있는 채워짐의 극한이다. 따라서 허공과 충만은 상호 보완의 대상이지 상반되는 대칭이 아니다. 네 벽으로 둘러 싸인 방안에 아무 물건이 없을 때는 비어 있는 허공이지만, 책상을 하나 넣으면 책상만큼 충만하면서 허공의 자리는 책상만큼 줄어든다. 책으로 채우면 채운만큼 허공은 또 준다. 이때 우리는 사물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는 편견 때문에 물건이 채워졌다 하지만, 이미 채워져 있어도 보지 못했던 공기 쪽에서 보면 채워진 물건만큼의 자리를 비워 준 것이다. 차 있다 비어 있다 하는 말의 표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 명확하지 않고서는 이 말의 실상과 허상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요, 이를 굳이 구분하려 함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있음(色)이 곧 없음(空)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있음과 없음이 사물 존재의 실상이니, 있음(色)이 오면 없음(空)이 가고 있음이 가면 없음이 오는 것으로 서로 자리를 피하여 다투지 않음이 삼라만상 존재의 실상이다. 사물 존재의 4가지 원소가 바로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인데 이 4 원소가 영원무궁토록 오고 가되 대자연의 큰 덩이에는 변함이 없는 제 자리의 지킴이요 또는 자리의 양보이지 결코 덜어내고 허무는 손괴행위가 없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부족하면 이것이 채워주는 것이기에 큰 틀로 보면 어느 하나도 사라짐이 아니다.

능엄경에 “너희는 왜 우물을 판다고만 하느냐 우물을 메운다고 못하느냐”함이 있다. 땅의 흙을 떠내에 파 들어가는 행위는 분명 우물을 파는 것이다. 이것은 흙을 기준으로 한 시각이요 표현이지, 공기를 기준으로 한 표현이라면 분명 공기로 흙을 메우는 행위가 바로 우물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사하려고 방 안의 물건을 빼낼 때 그 자리에 공기가 채워지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우물을 파는 작업은 분명 공기로 땅을 매우는 작업이다. 공기 쪽에서 보면 우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물을 메우는 것이다. 우물을 판다고밖에는 표현을 못하는 것이 바로 한쪽으로 집착되어 있는 시각이다. 한 삽의 흙을 떠 내면 한 삽의 공기가 들어가야 한다. 이는 물리적 법칙이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흙을 들어낼 수가 없다. 사람의 힘이 아닌 흙파기의 굴착기라 하더라도 결코 들어낼 수가 없다. 공기는 저절로 유동되는 유연성이 있기에 다행이지 만약 제 힘으로 유동되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공기를 유입시켜야 하니 이 행위를 보는 사람은 분명 우물을 메운다 할 것이다.

세상 이치란 기실 동전의 양 면인데 우리는 항시 한 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여 옳다 그르다 하니 바른 표현을 가질 수가 없다. 우물을 판다와 메운다는 분명 대칭적 개념이지만 우물을 만든다는 한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흙을 파낸다거나 공기로 메운다거나 결과에는 모순이 없다. 그러나 단어적 의미에만 고집되면 이 두 어휘의 어느 하나는 분명 적절하지 못한 용례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번에 말했던 ‘두 끝에 떨어지지 말라’ 함이 진리임이 또 생각난다.

말이 정확한 실상을 담는다는 것은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입을 열면 곧 진리에 어긋난다(開口卽錯)”함이 바로 이런 경우를 이름이니,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말을 부정하는 선가의 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