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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 [중]

기자명 법보신문

숭산(崇山) 법호 하나에 담긴 스승의 뜻

고봉 스님이 충남 예산의 덕숭산 정혜사 만공 스님의 문하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이 무렵만 해도 삼천리강토가 가난했던 탓에 덕숭산 정혜사의 절 살림도 늘 빈궁하기 그지없었다. 수행자는 많고 식량은 모자라니 그해 겨울 삼동안거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정혜사에 있던 모든 수행자가 걸망을 메고 양식을 탁발해 오기로 하고 마을로 내려갔다.
그 후 어떤 분은 열흘을 탁발한 뒤 걸망에 곡식을 가득 짊어지고 돌아왔고, 또 어떤 분은 보름을 탁발한 뒤 곡식을 짊어지고 절로 돌아와 양식을 보탰다.

숭산(崇山) 법호 하나에 담긴 스승의 뜻

고봉 스님이 충남 예산의 덕숭산 정혜사 만공 스님의 문하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이 무렵만 해도 삼천리강토가 가난했던 탓에 덕숭산 정혜사의 절 살림도 늘 빈궁하기 그지없었다. 수행자는 많고 식량은 모자라니 그해 겨울 삼동안거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정혜사에 있던 모든 수행자가 걸망을 메고 양식을 탁발해 오기로 하고 마을로 내려갔다.

그 후 어떤 분은 열흘을 탁발한 뒤 걸망에 곡식을 가득 짊어지고 돌아왔고, 또 어떤 분은 보름을 탁발한 뒤 곡식을 짊어지고 절로 돌아와 양식을 보탰다.

당나귀 타고 온 괴이한 탁발 행각

그런데 유독 고봉 스님만은 괴이하게도 보름이 지나 당나귀를 타고 한들한들 정혜사로 돌아와 그동안 탁발한 양식은 한 톨도 내어놓지 않고 오히려 타고 온 당나귀 품삯을 만공 스님더러 물어달라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만공 스님이 고봉에게 물었다.

“그동안 탁발한 것은 어찌하고 오히려 타고 온 당나귀 값을 내놓으라고 하는가?”
“소승이 탁발한 곡식은 모두 다 가난한 사람들 주고 왔습니다.”
“그렇다고 당나귀를 타고 와서 그 삯을 내달라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그러자 고봉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만공 스님께 대답했다.

“스님, 그동안 소승이 보름동안 절에서 나가 살다 왔으니 그것만 해도 쌀 한말 정도는 벌어놓은 셈이요. 또 소승이 그동안 절에 머물며 용돈을 썼다면 그 또한 몇 십량은 족히 넘을 것이니 그 두 가지만 계산해도 당나귀 값이 훨씬 쌀 것입니다.”

만공 스님은 하도 기가 막혀 더 이상 할 말이 잃었다.
“자네는 참 어찌할 수 없는 똑별난 사람일세. 다시는 상관 않을테니 자네 멋대로 지내게.”
그 후로는 일체 간섭조차 않았으니, 그렇게 해서 선객 고봉은 마음껏 선기를 드날릴 수 있었다.

덕숭산 정혜사에 머물고 있던 고봉 스님은 어느날 갑자기 승복을 벗어버리고 거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대구로 내려갔다.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김좌진 장군이 암살되고, 함경도에서는 탄광부들이 들고 일어나 독립운동을 하고, 만주에서도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산중에서 나만 편히 지내며 열반락을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대구의 유명한 술집 청수장의 주인 아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한 친구였으므로 고봉 스님은 그 친구와 더불어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독립운동을 모의하며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에서 ‘대한독립 만세’을 외친 이른바 ‘대구 만세사건’을 일으키는데 적극 가담, 결국은 체포되어 마산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때 왜경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해 입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해야 했다.

고봉 스님이 서울 미타사에 잠시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서 수행하던 제자 행원이 은사이신 고봉 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 제가 어제 저녁에 삼세제불이 다 죽었기 때문에 송장을 치우고 오는 길입니다.”

승복 벗어던지고 독립운동

이렇게 행원이 스승께 문안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고봉 스님이 대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행원이 먹다 남은 오징어와 술병을 꺼내 스님 앞에 놓았다.
“그럼 한잔 따르라.”
“잔을 내 주십시오.”
고봉 스님이 손을 내밀었다.
“이게 손이지 술잔입니까?”
행원이 술병으로 방바닥을 쳤다.
“이놈 봐라. 고약한 놈이로고!”

고봉 스님이 자세를 고쳐 앉으시며 제자 행원을 노려보았다.
“그럼 내 마지막으로 묻겠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다가 밥그릇이 깨졌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이에 행원이 대답했다.
“하늘은 푸르고 물은 흘러갑니다.”
“아니다!”
“3·3은 9입니다.”
“아니다!”
“오늘은 날씨가 맑습니다.”
“아니다!”
“방바닥이 뜨끈뜨끈 합니다.”
“아니다!”

행원이 더 이상 말없이 즉여(卽如)의 도리로 답하니 이윽고 고봉 스님은 제자 행원의 손을 뜨겁게 꽉 잡으며 말했다.

“꽃이 피었는데 내 어찌 나비가 되어주지 않겠느냐?”

“꽃 피었으니 나비가 되어 주마”

그리고 그 후 18일 만에 스승은 제자에게 게송을 내렸다.
“일체법은 나지 않고
일체법은 변하지 않는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법
이것이 이름하여 바라밀이라 한다.”
고봉 스님은 이때 유일한 상좌 행원에게 법호를 내렸다.
“오늘부터 그대 당호를 숭산(崇山)이라 하게.”
그렇게 해서 행원의 법호가 숭산으로 정해졌다.

숭산(崇山)
충남 예산 덕숭산(德崇山)의 법을 널리 펴고 법맥을 크게 전하고, 법을 깊이 행하라는 스승 고봉 스님의 간절한 뜻이 담긴 멋진 법호였으니, 이 법호를 내려받은 제자 행원 숭산 스님은 스승의 깊은 뜻을 그대로 마음에 새겨 한평생 덕숭산의 법을 전세계를 무대로 한껏 펼치며 덕숭산의 법맥을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 전세계 방방곡곡에 부처님의 법음을 확산시켰다.

참으로 법호 하나에 담긴 스승의 간절한 당부와 원력은 이토록 엄청난 위력을 나툴 수도 있다는 것을 고봉 스님과 그 제자 행원 숭산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이 말을 듣기가 얼마나 어렵고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새삼 느낀다. 그리고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내려 받은 내 이름에 대해, 과연 나는 내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스스로 한번쯤 물어볼 일이다.

윤청광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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